매일신문

훔친 사과가 맛 있다

외간 여성 탐하는 이상의 무엇이…

먹어선 안 될 사과가 더 맛있어 보이는 법이다.

속칭 '훔친 사과론'이다. 같은 당도의 사과인데도 훔친 사과가 더 맛있는 이유는 뭘까. 공짜라서? 그것도 하나의 이유는 되겠다. 그러나 더 큰 맛은 '훔치는' 데 있다. 인간의 소유욕이 윤리의 궤를 벗어나 금기의 스릴을 맛보는 것이다.

오죽하면 옛말에 '일도이비삼첩'(一盜 二婢 三妾)이란 말이 있을까. 수컷이 느끼는 성적 만족도의 3위는 첩과의 행위이며, 2위는 하녀이고, 1위는 도둑질이란 말이다. 여기서 도둑질은 물건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몸을 훔치는 것이다. 일종의 '몸 서리'(?) 라고나 할까.

하지 말라면 더 하고픈 것이 인지상정. 사랑도 그렇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 때문에 몸 상하고 마음 상한다. 포장마차에서 가슴을 쥐어뜯으며 강술을 퍼 마시는 대부분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시인 이문재는 '함부로 길을 나서 길 너머를 그리워한 죄'를 '노독'에 쓰고 있다. 길 너머를 그리워하는 것은 모르겠지만, 함부로 길까지 나선 것은 원죄에 가까운 일이다.

그 중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보스의 여인을 사랑한 죄일 것이다.

'달콤한 인생'의 선우(이병헌)가 그렇다. 그는 세련된 신세대 조폭이다. 빈틈없는 일처리, 맹목적인 복종과 의리로 냉혹한 보스 강사장(김영철)의 오른 팔이 된다. 보스에겐 젊은 연인 희수(신민아)가 있다. 어느 날 강사장은 그녀를 감시하라고 지시한다. 딴 남자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사실이면 처리하라는 것이다.

희수를 따라다니기 시작한 3일째. 희수가 남자 친구와 함께 있는 현장을 급습한다. 그러나 선우는 그들을 놓아준다. 그리고 곧 보스는 그를 응징하고, 선우는 보스와 조직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한다.

인간은 3초 만에 이성에 대한 호감도를 결정한다고 한다.

3초 안에 옷차림과 얼굴과 체형 등을 판별하고, 전체적인 이미지와 인상을 재조합한 후 자기와 어울리는지 검토한 후 '좋다''나쁘다'를 결정짓는 것이다. 단 3초만에 이 복잡한 계산이 이뤄진다니 인간 유기체는 과연 놀랍다.

선우는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렇게 냉철하고 빈틈없던 선우가 그 짧은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는 엉뚱한 선택을 하게 됐을까. 영화는 그 감정을 명확하게 그리고 있지 않지만, 그것은 바로 3초 안에 결정되는 '사랑'의 감정 때문이다.

'사랑'만큼 위험하고 비효율적인 단어가 있을까.

켄 플렛의 소설 '바늘구멍'에서는 평생을 냉혹한 스파이로 살아온 독일첩보원이 외딴 섬의 평범한 주부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면서 그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녀를 죽여야 할 기회를 놓치고, 오히려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그 첩보원의 모습이 처연하기 짝이 없었다.

'초록물고기'의 막동이 최후도 그렇게 가슴 아프게 한다. 보스의 여인 미애(심혜진)와의 관계를 뒤로 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세상을 등진다.

남자에겐 무모한 면이 있다.

보스의 여인을 탐하는 것은 외간 여성을 탐하는 것 이상으로 모험적이다. 선우의 감정을 모두 사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권력에 도전하고픈 욕구의 표현일 수도 있다.

선우는 비록 보스에게 충실한 부하이지만, 또한 이면에서는 보스의 비열한 폭력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젊은 여인을 '첩'으로 두고, 그녀를 죽이라는 명령까지 서슴지 않는 반(反)로맨티스트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김지운 감독은 처절한 복수극과 피가 철철 넘치는 스플래쉬(피 튀기는) 액션에도 달콤함을 잃지 않는다. 이병헌의 모범적인(?) 걸음과 똑똑 끊어지는 매끈한 대사,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부각시켜 여성관객을 유혹한다.

마지막 선문답은 영화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너무나 달콤한 꿈을 꾼 제자, 그가 울고 있는 것은 그 꿈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달콤한 유혹일수록 더욱 치명적인 당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 더 치명적이기에 유혹은 밤 그림자처럼 더욱 달콤한지도 모르겠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