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들 생각-'반딧불이의 무덤'

'반딧불이의 무덤'은 일본의 유명 문학상인 나오키상을 수상한 노사카 아키유키의 소설이다. 1988년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에 의해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전쟁이 얼마나 인간을 파괴하는지, 일상적인 행복을 얼마나 짓밟아놓는지를 어린 오누이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주인공 세이타가 역 기둥에 기대앉아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세이타가 죽자 역원이 시체 옆에 떨어져 있던 사탕상자를 주워 역 밖으로 내던져 버린다. 그 속에는 한 달 전 먼저 세상을 떠난 여동생 세츠코의 뼈가 들어있다.

이야기는 3개월 전으로 거슬러간다. 고베에 미군 폭격기 B-29의 대공습이 있던 날, 세이타와 세츠코는 겨우 피했지만 어머니는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고 이튿날 숨을 거두고 만다. 그 후 아이들은 먼 친척뻘 되는 아주머니의 집에 얹혀 살지만 얼마되지 않아 다시 그 집을 뛰쳐나온다. 밥만 축낸다는 아주머니의 냉대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결국 근처에 있는 방공호 속에서 둘만의 생활을 시작한다. 밤에는 빈딧불을 잡아서 조명을 대신하지만 반딧불은 하루만에 모두 죽어버리고 만다.

방공호의 생활이 계속되면서 세츠코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게 된다. 병명은 영양실조. 얼마 못 가 세츠코는 사라져가는 반딧불처럼 세상을 떠났다. 세츠코가 죽은 뒤 얼마 안 돼 전쟁은 끝났지만 세이타 역시 동생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난다.

1. 전쟁이 인간을 얼마나 파괴하는가에 대해서는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않더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은 빠질 수 없는 부분이며 현재까지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전쟁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과연 피할 수 없는 것일까?

2. 이 소설에서 작가는 세이타와 세츠코라는 남매를 내세워 전쟁의 이면을 뒤집어 인간의 아픔을 이야기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가해자인 일본을 피해자의 모습으로 미화해 일본을 옹호하려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책을 읽고 난 개인의 견해를 밝혀보자.

3. 이 소설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조금이라도 더 연명하기 위해 남의 어려움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세이타와 세츠코의 어려움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인간의 모습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전쟁에서의 이분법

전쟁에는 늘 승자와 패자,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이것은 지배자의 관점에서 전개된 역사의 기록일 뿐 일반 민중의 입장에서 전쟁을 바라본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세이타와 세츠코처럼 잘못도 없이 죽음을 당하거나 일상의 터전을 빼앗긴 '인간'만이 있을 뿐이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전쟁의 아픔을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다. 작품 속에서 일본이 피해자이고 미군이 가해자라는 민족적인 변명도 없으며 전쟁 장면조차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초반부에 등장하는 미군의 공습을 통해 시대적 배경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이후에는 전쟁통에서 어렵게 살아가다 결국 목숨을 잃게되는 어린 남매의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비극을 극대화하고 있다. 특히 열네살 세이타는 죽을 때까지도 전쟁이 끝났는지 일본이 승리했는지, 패전했는지 알지 못했으며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당시의 일본 국민들 대개가 그랬을 것이다. 결국 몇몇 지배자의 논리에 의해 희생될 수 밖에 없는 일반 민중의 입장에서 본다면 승전국도 패전국도 모두 전쟁 '피해자'일 뿐이다.

▲이기적인 인간

전쟁은 비참함을 남길 뿐이지만 인류의 역사에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그것은 아마 전쟁의 폐허와는 무관하게 여전히 부와 권력을 누리면서 한편으로는 전쟁을 통해 이득을 보는 이들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타인의 생사에 관계없이 자신이 얼마만큼의 이익을 더 얻을 수 있을지가 관심이다.

또 전쟁이란 극한 상황 속에서는 인간의 이기적인 속성이 극명하게 드러나 '인간성 상실'의 전형을 보여주기도 한다. 타인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해진 채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고 이익을 챙기는데만 급급해지기 때문이다. 먹을 것만 축낸다고 어린 아이들을 방공호로 내모는 친척 아주머니나, 죽어가는 세이타를 무심히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이런 인간의 이기적 모습은 잘 드러나 있다. 이런 '인간소외'의 모습은 비단 전쟁 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두 자신의 삶에 쫓긴 나머지 타인의 삶을 돌아 볼 여유없이 제 갈길만 재촉하기에 빠쁘기 때문이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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