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빠가 읽어주는 전래동화-곁말 잘 쓰는 마을

옛날에 한 마을이 있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말을 곧이곧대로 하는 법이 없었어. 이리 비비틀고 저리 배배꼬고 해서 아주 말을 이상하게 만들어 가지고, 그걸 유식한 척 쓰고 살거든. 예사 사람들 같으면 '웬 흰소리냐?'고 할 자리에 '무슨 까치배때기 같은 소리냐?'고 그러고, 그냥 '음식 맛이 싱겁다'고 하면 될 것을 '고드름장아찌 맛이라'고 하는데, 이런 곁말이 어쩌다 한두 번이 아니라 밤낮으로 내처 나오는 거야.

이러니 고을 원이 갈려가도 도통 배겨내질 못하네. 한 달을 못 채우고 쫓겨온단 말이지. 그쪽 사람들이 하는 말을 도통 못 알아듣는 데다가 원이 예사로 말을 하면 무식하다고 깔보고 드니, 이거야 원 사또노릇을 하려 해도 할 수가 있나. 어떤 원은 며칠 견디다가 제풀에 도망쳐 나오고, 어떤 원은 낯두껍게 달포씩 앉아 배기다가 짚둥우리 타고 쫓겨 나오고, 이러는 판국이지.

이때 한 의뭉스럽고 능청맞은 사람이 그 고을 원으로 가게 됐어. 가다가 목이 말라 길갓집에 들렀더니 어른은 없고 조그만 아이가 혼자 있더래.

"너희 아버지는 어디 갔느냐?"

"우리 아버지는 도둑놈 못자리한 데 갔지요."

벌써 곁말이 나오는 거야.

"그럼 너희 어머니는 어디 갔느냐?"

"젖은 놈 옷 벗기러 갔지요."

무슨 뜻인지 암만 생각해도 알 수가 있어야지.

"얘, 그게 다 무슨 뜻이냐?"

"에잇, 무식한 어른이로군. 장에 가면 서로 돈을 더 받으려니 덜 주려니 하니까 다 도둑놈이잖아요? 그런 도둑놈이 많이 모였으니 못자리한 데지요. 방아 찧는 데 가면 곡식을 물에 불려서 쿵쿵 찧어 껍데기를 벗기잖아요? 그게 젖은 놈 옷 벗기는 데지요."

아이쿠, 자칫하다가는 큰코다치겠다고 이 사람이 아주 단단히 마음을 먹었어. 그래 관아에 가자마자 마루 위에 떡하니 앉아서 큰 소리로 호령을 했지.

"여봐라, 어서 가서 밥상을 차려오되 반찬은 꺾어부들나물, 개구리깡충치, 후후입바람탕으로 갖추어 올려라."

당하기 전에 미리 선수를 친 거야.

그 마을 사람들이 들어 보니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거든. 한나절 동안 끙끙 앓으며 궁리를 해 봐도 도저히 알 방도가 없으니까, 이 사람들이 하릴없이 원을 찾아와 물었어.

"사또, 그게 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도통 모르겠습니다."

"너희들이 그러고도 곁말을 쓴다 하느냐? 꺾어부들나물이란 두릅이니라. 두릅을 꺾어 놓으면 부들부들하지 않느냐? 그리고 개구리깡충치는 미나리김치니라. 미나리논에 개구리가 깡충거리고 뛰어다니지 않느냐? 또 후후입바람탕은 뜨거운 죽이니라. 죽을 뜨겁게 쒀 놓으면 입바람을 후후 불어 식혀 먹지 않느냐?"

"아이고, 사또. 제발 말을 좀 쉽게 하십쇼. 그래 가지고는 한 마디도 못 알아듣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이제부터 피차 곁말을 쓰지 말고 예사로 말을 하고 살 테냐?" "좋습니다." 그래서 곁말을 없애고 원노릇 잘 했다는 이야기.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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