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선생님, 우리 학교에 연못을 만들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연못에 물고기도 있고 분수도 있어서 정말 좋아요.', '저는 교장선생님 웃는 모습이 좋아요. 교장 선생님! 언제나 우리 학교를 밝은 웃음만 나게 해 주세요.', '교장 선생님 얼굴을 바라볼 때 너무 힘들어 보이네요. 교장 선생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며칠 전 내 집무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온 아이들이 조금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전해 주고 간 편지의 내용들이다. 비록 글씨체와 문장은 서툴지만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듬뿍 담겨 있어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고 있다.
아이들이 주고 간 편지를 다시 꺼내어 읽으면서 문득 초임 교사 시절을 생각한다. 나의 교직 생활은 모교에서 시작되었다. 첫 출근을 하니 초등학교 때 1학년 담임이셨던 H선생님께서 계셨다. 사실 처음에는 은사님과 함께 근무하게 되었다는 반가움보다는 선생님께서 지켜보시는 데서 어떻게 내가 아이들을 가르칠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때까지도 나는 선생님 앞에서는 여태 어린 제자로서의 티를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여린 마음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나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덥석 두 손을 잡으시며 모교의 교사가 된 나를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여기셨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아무런 말씀이 없으셔도 선생님 곁에서 근무한다는 것만으로도 늘 마음이 푸근했었는데, 만 2년간을 함께 근무하시던 선생님께서 이웃 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선생님이 떠나시고 나니 내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 그 후로도 가끔 출퇴근하는 차 속에서나 잠깐 뵙곤 하던 것이 몇 년 지나 다시 타지역으로 전출하신 후에는 영영 소식이 끊어졌다. 세월이 훌쩍 지난 후에야 선생님께서는 40여 년을 오직 평교사로 교단에 서시다가 정년 퇴임을 하셨다는 소식을 인편으로 전해 들었다.
아직도 나의 무심함으로 인해 근황조차 챙기지 못하는 지금, 내 마음 속에는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언제나 저학년을 담임하시면서 어머니 같이, 때로는 할머니 같이 다정다감한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보며 가르치시던 H 선생님! 선생님 곁에서 진정한 사도(師道)가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깨닫고 배웠지만, 30여 년의 교직 생활에서 아직 한 번도 그처럼 실천하지 못한 자책감이 나를 마냥 부끄럽게 한다.
금년에도 스승의 날이 가까워지자 어김없이 각종 매스컴을 통해 촌지와 관련된 우려의 소리가 높다. 더욱이 학부모를 대상으로 '촌지 안주고 안 받기 운동'에 관한 가정통신문까지 보내야 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서글퍼진다. 지난날에는 작은 정성의 의미로서 미풍양속으로 통하던 촌지(寸志)란 말이 이제는 마치 부조리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오늘날의 이 세태에 과연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져야 할 것인가. 비록 권력은 없지만, 교직에 대한 소명(召命) 의식을 가지고 묵묵히 교단을 지켜나가는 이 땅의 참스승들이 진정한 교육자로서의 소신을 가지고 교육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한 학년을 마칠 때는 그동안 자녀의 성장을 위해 고생하신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아름다운 풍토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모든 교직자는 언제나 자정(自淨)의 정신으로서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사도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자기에게서 배운 제자가 먼 훗날까지 자신의 인생에 있어 참스승으로서 오래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권영세 아동문학가·대구신암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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