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조와 함께

시름 깝치는 날 운주사 찾아가면

금 가고 으깨어진 삶을 끌어안은

알 듯한

그 얼굴 모습

닳아 눈물겨웁다

어느 것 하나 성하지 않은 눈 코 귀 입

그래도 너그러움 잃지 않고 지니고 선

운주사

석불 앞에서

마주 한 몸 저리다

조영일 '운주사'

극도로 언어를 절제한다.

간결한 묘사에 경도되어 있다.

운주사 석불의 얼굴 모습을 두고 '금 가고 으깨어진 삶을 끌어안은'이라고 형용한다.

흡사 세상을 살만큼 산 한 사람의 초상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성하지는 못하지만 너그러움 잃지 않고 있는 석불 앞에 서니 자신의 몸이 별안간 저려온다고 토로한다.

몸이 저린 것은 갖은 풍상을 겪은 석불과 비견되지 못할 자신의 삶을 문득 생각하다가 불시에 일어난 반응이리라. 석불의 너그러움에서 우리는 결국 삶의 참된 지향점을 오래 반추하게 된다.

사소한 것에서 인생의 뜻을 발견하는 일은 이렇듯 귀한 것이다.

이정환(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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