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어느 토요일 저녁, 일찍 귀가해서는 TV를 보고 있었는데, 너무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동네 책방. 츄리닝 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찾아가서는 한참동안 책을 골랐다.
책방 안에는 졸린 얼굴을 한 주인 아저씨와 참고서를 사러온 동네 아이들 한두명, 소설책을 사가던 남자 손님 한명과 내가 다였다.
동네 책방에 꽂혀있는 책이래봤자, 참고서가 대부분이고, 동네 아줌마들이 사볼만한 여성지, 그리고 소설책과 시집, 처세술을 가르치는 책 몇권이 전부이지만, 그래도 잘 찾아보면 가끔 보물 같은 책을 발견할 수도 있다.
르 끌레지오의 '조서'라는 책을 2천 원에 샀던 것도 아마 그래서였던것 같다.
시내 큰 서점에서는 개정판을 3천500원에 팔고 있었지만, 그 책방에는 초판본을 본래 가격대로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번은 동네에서 멀지 않은 중고책방에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 초판을 700원에 산 적도 있었다.
중고책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처음 나올 때 가격이 그랬던 모양이었다.
그날도 소설책 한 권과 시집을 사들고 와서는 밤을 새워 다 읽어버렸다.
시시한 TV 프로그램을 볼 때 느꼈던 무료함이한순간에 사라지고, 그날 밤 나는 동네 책방에서 사온 소설책으로 밤을 하얗게 새버렸다.
집 가까이에 책방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던지, 마실 나가듯 슬리퍼 끌고 책을 사러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았던지….
동네 책방을 안 가본지 무척 오래 됐다.
동네 책방이 하나둘 줄어들면서 이제 책을 사려면 시내 중심가까지 나가야 한다.
그런데 한두살 먹을수록 시내엔 덜 나가게 되고, 결국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게 된다.
인터넷서점을 이용하면서부터는 늘 한꺼번에 여러 권의 책을 사버린다.
한권씩 사서 야금야금 읽어치우던 즐거움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책방 혹은 서점은 단순히 책을 사는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책을 매개로 한 갖가지 문화 행위가 이뤄지는 곳이 서점이라는 걸 강조하지 않더라도, 몇 시간씩 서점 안을 헤매는 건 즐거운 일이다.
그 즐거움이 옛 이야기가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대구MBC 구성작가 이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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