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석제 칼럼) 비냉…물냉…회냉

가치 있는 유행어, 가치 없는 말

초등학교 6학년 때, 고모를 따라 생전 처음 서울의 냉면 전문식당에 갔을 때 들었던 '비냉'이란 신기한 단어의 충격은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그 뒤에 알게 된 바 비냉의 동료는 '물냉'인데 '회냉'도 친척간이라는 것이었다. 농촌 마을에서 나고 자랐던 나는 도시 사람들끼리 쓰는 전문용어로서의 준말이 있다는 것을 그때까지는 몰랐더랬다.

중학교 때부터 바쁘고 시끄러운 도시로 와서 살게 된 이후 준말 학습은 계속되어 30대에 들어서자 거의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이를테면 내가 30대 중반에 택시에 받힌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적에 옆 침대에 누워 있던 사람은 택시기사였는데 '뻐공'에서 합의를 하러 오는 것을 기다리며, '택공'과 협상해야 하나 '택공'에 대해서는 '택'자도 모르는 내게, 일반 자동차보험회사보다는 '택공'이 환자에게 빡빡하고 '뻐공'은 '택공'보다 한 수 위라고 하면서 투지를 다지고 있었다. '뻐공'은 버스공제조합, '택공'은 택시공제조합으로 소속 조합원이 사고를 냈을 때 보험사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약 20여년 전에 미팅을 하던 대학생들의 입에 흔히 오르는 단어에 '존심'이 있었는데 이는 '자존심'의 준말이다. 오랜만에 버스 타고 교외까지 나가 '딸팅'(딸기밭에서 하는 미팅)을 하는데 상대가 나를 '으악카'(으악 소리가 날 정도로 수준 낮은 사람)로 보는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 같은데 애프터를 신청하자니 '존심'이 상하는 것이다. 그냥 자존심이라고 하면 좀 심각하지만 "야, 아무리 물카라고 존심도 없냐?"고 할 때의 '존심'은 가벼운 인생사에 그리 연연할 필요가 있느냐, 집에 가서 발 닦고 자자는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이런 준말은 같은 또래나 집단 구성원 간에 쓰는 은어나 사투리로서 구성원들의 의사소통이나 일체감 조성에 긍정적으로 기능하는 반면 부작용도 없지 않다. 군대에 가서 사춘기 시절에나 쓰는 말을 입에 달고 살거나 제대를 하고도 군대 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 말을 쓰는 사람은 나이보다 어리고 경박하게 보이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부작용과 큰 상관이 없고 기실 나도 이런 추억과 시간에 밀접하게 결합된 언어의 창고에서 꺼내쓸 수 있는 준말과 사투리와 은어를 소설에 고맙게 써먹고 있다. 그런데 나처럼 말을 가지고 먹고 사는 사람의 신경을 살살 건드리는, 언제 생겼는지 모를 충치처럼 존재 이유를 알 수 없는 단어도 있다. 예를 들면 '완전, 엄청, 훨, 간만에' 같은 것이다.

'완전'은 대개 '완전히'나 '완전한'의 준말이다. '완존'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군대용어인 '완전 군장' 같은 것과 인척관계인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여성을 보면서 '완존 죽음이네' 하고 나를 향해 벌쭉 웃던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내 식의 '가히 뇌쇄적인 미인이로다'가 우스꽝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엄청난' '엄청나다'의 준말인 '엄청'은 빈도수에서 '완존'을 '훨' 압도하고 나이 지긋한 어른부터 어린 학생들까지 무의식적으로, 무차별적으로 쓰고 있다.

그런데 '훨씬'이라는 단어를 '훨'로 줄인 구체적인 이유를 알기 어렵다. '훨씬'이라는 단어보다 '훨'이 한 글자라도 적어서 경제적인가. 아니면 '씬'이라는 음소가 발음하기 거추장스러운가.'훨'은 '훨훨'을 연상시켜 아예 비교가 안 되게 초월적인 의미를 가지는가.

'간만에'라는 단어는 최근 어떤 장편소설에서 발견한 단어다. 천년 전 역사 속의 인물을 다루면서 그 여성이 '오래간만에'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고 '정말 간만에 보는 사람이었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작가를 잘 몰랐지만 작가의 나이와 언어감각이 짐작되고도 남았다.

인터넷에서 쓰이는 '외계어'는 내 상상의 논두렁 위를 훨훨 나는 수준이다. '즐' 같은 통신언어는 약과이고 외계어, 하오체, 이상한 이모티콘에 이르면 '훨' 정도를 붙들고 시비하는 것은 '엄청 간만에 보는 완존 왕순진'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럴 것이다.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언어를 자신들의 추억과 삶에 결부시킨다. 언젠가는 그것들을 가져다 쓸 것이다. 그렇지 못한 단어들은 유행을 다하면 가치없이 사라져갈 뿐이고 지금도 가치가 없다.

성석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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