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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에서-삼국지라는 이름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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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귀로 듣던 시대에서 눈으로 보는 시대가 확실한 우위를 점해가고 있다. 특히 'N세대, Net generation'의 사고는 자'모음의 조합에서 이루어지는 것보다 '0'과 '1'의 조합에서 이루어지는 것에 더 익숙해져 있다.

컴퓨터 통신, 인터넷, 개인 휴대전화 등 사이버 커뮤니케이션이 일상화되면 비트의 기능적 가치는 극대화될 것이다. 육체노동에서 '사이버 워크'(cyber-work)로 일의 형태도 변할 것이다. 아홉시에 출근하여 다섯시에 퇴근한다는 'nine to five'라는 용어는 더 이상 사전에서 찾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스타크래프트 같은 인터넷상의 다자간 전자게임을 통해 밤을 지새우며 성장하는 '사이버 키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갈 것이다. 김영하의 '삼국지라는 이름의 천국'은 이런 현상을 반영한 소설이다.

주인공인 자동차 외판원은 현실공간에서는 볼품없는 영업사원이다. 그러나 컴퓨터를 통한 가상공간에서는 유비나 조조 등을 선택하여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왕 중 왕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점점 더 가상세계 속에서 펼쳐지는 기호놀이에 심취한다.

이 소설은 현실에선 나락을, 가상공간에서는 천국을 경험하는 주인공의 대비되는 삶을 통해 21세기 인간들의 소외와 사회병리현상을 적절하게 고발하고 있다.

90년대 전반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강력한 이념성이 제거되고 이데올로기도 하나의 기호일 뿐이라는 논리는 인간도 하나의 기호처럼 다루어질 수 있다는 심리기제를 이 소설은 내포하고 있다.

90년대가 설치해 놓은 기호라는 장치는 이처럼 역사-반역사, 민주-비민주, 고급-저급, 무거움-가벼움의 경계선을 무화시켜 버렸다. 기호놀이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존엄성도 기호처럼 다루어질 21세기에 삶도, 전쟁도, 살인도 기호놀이로 취급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호놀이가 21세기에 위치할 문학의 자리라면 그것은 비극이다. 살인도 기호처럼 다루어질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

노상래 영남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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