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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도굴 성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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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400년 전 선조들도 라면과 소주를 먹었다?'

최근 발굴작업이 끝난 경주 황성동 고분. 유물은 완전히 도굴당하고 양초 2개만 발견됐다. 석실 내부 시신이 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놓여진 양초는 도굴꾼이 무덤 조명용으로 사용했던 것.

더욱이 이 양초들이 최소 30∼40년 정도 묵은 것으로 추정되면서 도굴에 얽힌 일화들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도굴은 일제 강점기 이후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국내 도굴의 역사는 최소한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주시 순흥리 고분.

지난 1970년대 중반 이 일대 발굴에 참가했던 윤근일 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순흥리 고분은 삼국시대 유적인데 조선시대 분청사기 등이 나왔다"며 "조선시대 도굴꾼이 무덤에 들고 들어갔다가 안에 두고 나온 것으로 추정했다"고 회고했다.

윤 소장은 또 "소주병이나 라면봉지 등이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유물(?)"이라며 "힘들게 발굴했지만 역사적·학문적 가치가 있는 유물은 없고 도굴 흔적만 발견될 때 무척 허무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굴꾼이 문화재 발굴에 도움을 줬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난 1970년대 이름을 날렸던 도굴범 최모씨가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자 경주시에서 임시직 공무원으로 채용, 발굴 전문가로 활용하기도 했다는 것. 또 봉분이 없는 평묘의 경우 일반인들은 무덤의 위치파악도 쉽지 않지만 도굴꾼들은 땅바닥에 물을 뿌려 놓은 뒤 물이 스며드는 모양새와 속도를 보고 정확하게 알아내기도 해 발굴전문가들이 배우기도 했다.

문화재 관련 수사 베테랑인 한 형사는 "도굴꾼은 밤이슬을 맞으며 음침한 곳에서 활동하는 탓에 천식 등 호흡기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아 용의자를 2, 3분만 관찰하면 대강 감을 잡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한편 지난해 이후 현재까지 문화재청에 신고된 도굴은 모두 9건으로 집계됐으나 파악이 안 된 것까지 더하면 이보다 훨씬 많고 현재도 곳곳에서 도굴이 진행 중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주·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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