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1시 대구 달성군 현풍면 대리. 김말선(90) 할머니가 집 앞 마당에서 손님들을 반가이 맞았다. 손녀뻘의 봉사자들이 매주 찾아와 음식도 만들어주고 말벗도 되어주며 어깨를 주물러 주는 등 살갑게 대해준다.
김 할머니는 결혼 1년도 안 돼 남편이 일본으로 건너가 소식이 끊겨버린 뒤 50년이상 가족없이 혼자 살았으며 이곳으로 온 지 27년이 지났다. 2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정부지원금을 받아 방세도 내고 생활비로 쓰며 살고 있는 것.
하지만 이젠 외롭지 않다. 두달 전부터 고향주부모임 봉사자들이 찾아 오면서부터 이날 만큼은 명절분위기를 느끼기 때문. 할머니는 "늙고 병들었지만 자식보다 더 따뜻한 심성을 가진 딸이 4명이나 생겨 마음이 든든하다"고 했다.
'땅의 천사'라는 별명을 가진 주부 서희숙(41)씨는 "일주일에 한번이지만 할머니를 뵙고 오면 마음속이 뿌듯해진다"며 "기회가 된다면 농촌에 혼자 남겨진 쓸쓸한 노인들을 더 자주 돕고 싶다"고 말한다.
현풍면 대리 일대는 한때 빈 집이 없을 정도로 번창한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절반 이상이 떠나고 70여 가구 150여명만 남았다. 그 중에는 홀몸 노인들도 많다. 한 할머니(80)는 혼자서 손자(9·초교2년)를 키우고 있지만 정부지원금 한 푼 못받는 처지. 다 쓰러져가지만 집이 있고 소식조차 알 수 없지만 호적상 부양가족인 아들이 있기 때문. 이 할머니는 "며느리가 죽은 뒤 어쩔 수 없이 손자를 키우며 살고 있다"고 한다. 또 10년째 골방에 살고 있는 한 할아버지(79)는 각종 질병을 앓고 있지만 병원 혜택 한번 받지 못하고 '인간우리(?)'에 갇혀있다.
이렇듯 상대적으로 복지에서 소외된 시골 노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봉사단체가 농협 대구지부 '고향주부모임'이다. 간병인 교육까지 받은 80명의 회원은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외진 곳에 사는 노인들을 돕고 있으며 4명 1개조로 매주 한 지정된 곳에 가서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농협중앙회 대구지부 새농촌지원팀 박미향 여성복지과장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지만 버려지다시피 관심밖에 있는 홀몸노인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모임"이라며 "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주부 봉사자들에게 간병인 교육을 시켜 봉사현장에 투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사진: 현풍농협 고향주부모임 간병봉사단원들이 자식도 없이 혼자 살고있는 김말선(90) 할머니를 찾아 밑반찬을 만들며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시진 왼쪽부터 서희숙, 유영숙씨, 곽미옥 여성복지과장, 서정옥 회장.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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