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오면 '바캉스(vacance)' 열풍이 불곤 한다. 집을 비워 놓고 멀리 떠나서 쉰다는 바캉스는 '텅 비우다'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프랑스어에 들어와 '휴가'라는 뜻이 됐다. 영어에 들어와서는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서는 '버케이션(vacation)' 등으로 쓰이면서부터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산업의 고도성장으로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여가 활용으로 바캉스가 보편화됐으며, 우리나라에선 1970년대 중반부터 바람을 몰고 왔었다.
◇ 프랑스인의 여름 휴가 즐기기는 유명하다. 여름이 되면 '바캉스'라는 말의 뜻 그대로 파리가 텅텅 빌 정도로 일손을 놓고 바다로, 산으로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 사정이 크게 달라진 모양이다. 영국 '가디언'지는 프랑스 당국 통계를 들어 '4년 전 도입된 35시간 근로제 덕분에 연중 휴가 일수가 평균 11주로 늘어났지만, 여름 휴가는 오히려 2주 정도로 줄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는 외신이 보인다.
◇ 프랑스 사람들의 이 같은 바캉스 관습 변화는 근로제 탓만은 아니다. 늘어나는 실업률과 제자리걸음하는 경제 성장률 등 경제난과 맞물려 있다. 한 조사에선 휴가를 가는 두 명 중 한 명은 지방의 친구나 가족을 찾고, 와인 대신 물을 마시는 등의 절약형 피서 바람에 피서지 업소들이 울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여름휴가가 절정이다. 하지만 지금의 프랑스 사정에 비길 바도 못된다. 올 여름 피서객들은 고급 숙박시설을 기피하고, 찜질방 등을 이용하는가 하면, 음식도 가져가서 해결하는 '알뜰 피서' 경향이 뚜렷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피서지마다 인파는 넘치지만 특수를 기대했던 업소들은 파리를 날리고 있는 판이란다. 아예 집에서 먹고 노는 '방콕(방에 콕 박힘)'족 역시 만만찮다고 한다.
◇ '여가'는 희랍어로 '스콜레(scole)'다. 학교(school), 학자(scholar)의 어원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쉰다는 건 곧 교양을 쌓고 자기 수양을 한다는 뜻과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진정한 휴식은 그저 웃고 즐기는 게 전부가 아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반성하는 기회를 가지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거울이 될 때 그 의미가 더 커진다. 그러나 우리의 바캉스가 돈이 없어 찌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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