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청에서의 생활은 시작부터 바빴다. 군사정권은 '국가재건국민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는데 요즘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혁신운동이었다. 공무원 초년병인 나에게 그 일이 맡겨져 군청 내의 동료와 주민을 상대로 강의를 하면서 바쁜 날들을 보냈다.
그런 와중에도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쉼터같은 모임이 있었다. 뜻이 맞는 젊은이들이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독서토론회도 열었다.
사실 그 시절 나만의 비밀스런 즐거움이 있었다. 출근 때면 만나는 빨간 코트에 단발머리 아가씨. 곁눈질 한 번 없이 또박또박 걸어가는 단정한 모습에 금세 마음을 빼앗겼다. 수소문 끝에 그녀가 청도에서 유일하게 대구교대에 다니며, 통학을 위해 매일 아침 군청을 지나 역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넉살이 좋았다면 "어이 학생, 지나가는 걸 보니 8시10분이겠네"하며 농이라도 걸어 보았을텐데..... 바라만 보다가 그만 경북도청으로 발령이 났다.
도청으로 옮기고 얼마 지났을 즈음 토론회 멤버였던 여선생님께서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후배라며 선생님 한 분을 소개해 주었다. 그런데 약속장소에는 빨간 코트에 단발머리 아가씨, 바로 그녀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날 우리는 수성못을 거닐며 마치 오랜 친구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 후 시간만 나면 청도로 달려갔다. 그러나 고향에서 교사를 하고 있는 그녀와 만나면서 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열차 데이트였다. 미리 '토요일 오후 대구에서 3시20분'이라고 알려주면 그녀는 청도역에서 기차에 합류했다. 우리는 밀양으로 가 표충사를 거닐다가 밤 기차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그녀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님께서 귀히 키운 딸을 가난한 집안의 장남에게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가슴 한 구석에 구멍이 뻥 뚫린 채 불면의 밤을 보내던 중 출장간 점촌의 어느 여관방에서 나는 긴 편지를 썼다. "아득히 기적 소리가 들리면 그대가 타고 오는 기차가 아닌지 문득 목을 빼고 쳐다보게 되오."
그리고 한달쯤 뒤 그녀는 다시 돌아와 내 손을 잡고 "글을 참 감동적으로 잘 쓰시데요"하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들으니 공무원이었던 그녀의 오빠들이 어머님을 설득했다고 한다. 아내는 지금도 그 편지를 간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장롱 밑에서 누렇게 색이 바랜 낯익은 편지를 꺼내 보여준 적도 있다. '사랑은 비를 타고'라는 영화가 있지만 나에게 있어 사랑은 기차를 타고 왔는가 보다.
사진 : 이의근 도지사와 이명숙 여사의 결혼식 모습(1968년 1월 대구예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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