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시민 기업' 어떻게 키울 것인가?

"대형소매점의 부도덕한 기업윤리와의 총성 없는 전쟁을 선포한다. 대한민국 금수강산 방방곡곡에서 오천만 겨레의 신음과 한숨 소리가 메아리치고 있다."

한 안티 대형소매점 사이트의 선전포고문이다. 전국의 중소 유통업체 상인들도 들고 나섰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대형소매점 영업시간 규제를 시도하고 있다. 학계에도 우군이 있다. 변명식 한국유통학회 회장은 "약육강식의 논리로 가다간 서민경제의 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는 문제"라며 "지자체에서 조례를 제정해서라도 대형업체의 입점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정도의 열기와 성의면 지방의 중소 유통업체 상인들이 한시름 놓을 만한 일이 벌어질 것도 같은데 사정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열악한 지방경제를 죽이는 주범 중의 하나로까지 지목되는 대형 소매점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거시적으로 보자면 지방도 이미 공동체문화가 쇠퇴하고 소비자본주의가 심화되었다고 진단할 수 있을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대형소매점이 파는 것은 단지 상품만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라이프스타일을 팔고 있는 것이다. 가족 나들이문화의 전형을 팔고 있는 것이다. 대형소매점 애용자들의 다음과 같은 진술들은 이 문제가 규제만으로 돌파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라는 걸 시사해준다.

"온갖 식재료며 신선한 생선이 가득한 걸 보고는 마치 내 삶이 격상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주부들에게 대형소매점은 스트레스 해소처다." "어린아이 둔 주부들한테는 더 이상의 사교장이 없다." "힘들여 번 돈으로 아내와 여유 있는 쇼핑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하게 느껴진다." "이것저것 구경할 것도 많은데다,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나들이하는 것을 무척 좋아해 즐거운 마음으로 다닌다."

이런 걸 가리켜 딜레마라고 하는가? 작은 슈퍼마켓을 하거나 재래시장에서 장사하는 이웃이 대형소매점 때문에 한숨짓는 걸 보면서 가슴 아파하면서도 막상 쇼핑의 발길은 대형소매점으로 향하더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한결 같은 증언이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시민 기업' 모델이다. 지방의 영세 상인들이 힘을 합해 공동으로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는 최신식 유통업체를 세워 중앙의 대자본과 선의의 경쟁을 해보자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시도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별 재미를 못 보았다. 왜 그런가? 크게 보아 두 가지다. 사공이 많다 보니 의사결정의 난맥상이 드러나고, 자체 경영을 시도하다 보니 경영 노하우에서 한참 밀린다.

최근 들어 어느 지역에 '시민 기업'이 떴다는 소식은 자주 나오는데 경영자를 스카우트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걱정부터 앞선다. 시민 기업을 구성한 다양한 주체들이 각자 큰 감투 하나씩을 맡는 재미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스카우트 비용을 절약하느라 그러는 걸까? 아니면 경영을 만만하게 보는 걸까? 돈이 없어서 그렇지 일단 큰 돈만 모으면 경영은 누구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누가 더 고향에서 오랫동안 인맥을 많이 쌓았느냐가 경영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보는 걸까?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시민기업은 실패하기 십상이다. 시민기업은 시민운동과는 다르며 달라야 한다. '시민'이 아니라 '기업'에 무게를 둬야 한다. 소비자는 냉정하다. 비슷한 조건에서 시민기업으로 기울망정 향토애만으론 시민기업을 지지해 주지 않는다. 경영 아이디어와 서비스로 승부를 걸어야지 토착 경력과 인맥으론 역부족이다.

지역 언론이 그런 경제'경영 문제에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지방신문들이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에 관한 이야기로 신문 도배질하는 건 그만 두면 좋겠다. 어차피 '소비자본주의 타도'를 위해 투쟁할 게 아니라면 '지방 살리기' 차원에서 그 문법에 적응하는 건 불가피하다. 구조'제도 개혁을 외면하라는 게 아니라 동시 병행을 해보자는 것이다. 지방 출신으로 서울에 가서 전문경영인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에 고향을 위해 봉사할 사람이 그렇게도 없는 건지 그것도 궁금하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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