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간 한국마라톤을 외롭게 이끌어온 이봉주(35.삼성전자)가 25일 베를린마라톤 완주를 끝으로 올 시즌을 마감했다.
27일 낮 오인환 삼성전자 마라톤 감독과 함께 귀국하는 이봉주는 휴식과 회복훈련을 한 뒤 오는 12월 초부터 동계훈련에 돌입할 계획이다.
이봉주는 베를린마라톤에서 현역 마라토너로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생애 33번째 풀코스(42.195㎞) 완주에 성공했으나 기록은 2시간12분29초로 당초 목표로 했던 2시간8분-9분대 진입을 이뤄내지 못한 채 11위에 그쳤다.
이봉주는 그러나 내년까지 현역 선수생활을 계속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육상단은 "회사와 내년까지 뛰기로 약속이 돼 있다. 흔들릴 일은 없다. 내년까지는 무조건 뛴다"고 밝혔다.
지난 90년 전국체전에서 마라톤에 데뷔한 뒤 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 2000년 도쿄마라톤 한국신기록(2시간7분20초), 2001년 보스턴마라톤 우승과 시드니.아테네올림픽 부진, 2001년 에드먼턴 세계선수권 중도 기권 등 숱한 영욕 속에 지나온 15년의 선수생활을 최소한 1년 더 연장하기로 한 것이다.
이봉주가 내년까지 뛰기로 했지만 더 심각한 것은 총체적 난국에 빠진 한국마라톤에 '포스트 이봉주' 시대를 열어젖힐 유망주가 등장할 기미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엄혹한 현실이다.
이봉주의 이번 베를린마라톤 기록은 2시간12분대이지만 올 시즌 국내 베스트다.
올해에는 김이용(32.국민체육진흥공단)이 전주마라톤에서 2시간13분대를 기록했을 뿐 2시간15분 안에 들어오는 선수도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들었다.
급기야 지난 8월 헬싱키 세계선수권에서는 한국마라톤이 40위권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채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한국마라톤은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 감독)가 지난 92년 뱃부오이타마라톤에서 2시간8분43초로 한국기록을 2분 이상 앞당긴 뒤 94년 동아마라톤에서 김완기, 같은 해 보스턴마라톤에서 황영조가 경쟁적으로 기록을 단축해 '기록의 르네상스'를 맞았다.
98년과 99년에도 김이용과 이봉주가 한해 걸러 2시간7분대로 진입해 기록 경쟁에 불이 붙는 듯 했지만 2000년 이봉주의 한국기록 이후에는 '기록시계'가 6년째 제자리에 멈춰섰다.
지난 74년 문흥주의 2시간16분대 한국기록을 깨는데 10년 이상 걸렸던 70-80년대 암흑기가 다시 엄습했다는 위기감도 감돌고 있다.
대한육상연맹은 헬싱키 세계선수권의 참담한 실패를 교훈삼아 기술위원회를 열어 한국마라톤 중흥을 위한 종합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미래는 여전히 먹구름에 뒤덮여있다.
황영조, 이봉주의 뒤를 이을 차세대 에이스로 각광받는 지영준(24.코오롱)은 팀내 파열음이 발생해 팀을 떠난 뒤 아직 정상적으로 팀 훈련에 합류하지 못하고 있다.
마라톤 전통의 명가 코오롱은 일본 국가대표 사령탑 출신의 나가타 고이치(57) 감독을 새로 영입해 명가 재건에 나섰으나 팀을 정비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지영준 등 차세대 주자들이 연내 2시간10분대 이내의 기록을 세울 수 있을 지도 덩달아 불투명한 상황이다.
타고난 심폐기능과 지구력을 가진 극소수 천재 마라토너에게만 의존해 국제대회에서 안이하게 열매만 따먹었을 뿐 엘리트 마라톤의 제대로 된 선수층을 전혀 배양하지 못한 육상연맹과 육상계가 가혹한 시련을 형벌로 받고 있는 셈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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