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는 우리를 열리게 하는 소중한 통로요 은밀한 길입니다. 부조리한 현실과 마주칠 때마다 뜨거운 내면을 들여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항변하게 했고, 고고한 정신을 지향하면서 보다 아름다운 삶을 꿈꾸게 했습니다."
'시·열림' 동인은 1990년대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여성시인들 모임이다. 강문숙(91년), 이혜자(95년), 김현옥(97년), 문채인(98년), 배영옥(99년) 등 다섯 명이 동인을 결성하고 99년 첫 동인지를 출간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시간적인 차이는 있었지만 모두가 신춘문예를 통해 한 해의 새아침을 시와 함께 내디딘 공감대가 동인으로 한데 뭉치게 한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잠겨져 있던 삶과 꿈을 시를 통해 열어 갈 것이라는 열망을 모은 것이다. 그러나 시의 열림을 향한 담금질에는 결코 순풍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적인 성향이나 개성이 서로 판이하게 달라서 때로는 치열한 공방이 수위를 넘을까 조마조마한 시간들도 있었다. 초창기에는 강문숙 시인 외에 모두가 독신이었는데다 신춘문예 출신들의 성향으로 미뤄 자존심 싸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 같은 긴장감이 오히려 각자의 시세계를 한치의 양보와 타협도 없이 내면으로 여물게하는 동인이 되었다. 강 시인은 삶의 구체적인 방식을 시로 형상화하는 역량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 절망 뒤에 감추어진 삶의 희망을 찾아내는 치열한 시적 감각은 죽음의 깊은 나락까지 떨어져 보지 않고는 드러낼 수 없는 삶의 페이소스와 자기성찰의 함량을 지니고 있다.
이혜자 시인은 미완의 그릇이라고 해도 좋을 성싶다. 자신의 모습을 그림자와 검정색으로 읽을 정도로 지독한 어둠의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언어를 변주하고 풍자하는 여유는 점입가경이다.
김현옥 시인은 천연덕스러움이 있다. 그의 손에 잡히면 젓가락이 되고 흥얼거리면 노래가 된다. 묘한 매력을 가진 시인이다. 결코 시를 어렵게 쓰지는 않지만 내면적으로는 뜨거운 열정과 도전의식을 지니고 있다.
'시·열림'은 처음 시작할 때는 5명이었지만, 결혼과 함께 문채인 시인(현재 문성해라는 필명으로 활동)이 인천으로 이주하면서 이탈했다. 또 4집을 끝으로 배영옥 시인이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도중하차 하고, 이향 시인(2002년)이 합류했다가 다시 빠져나가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시·열림' 동인들은 만남도 부정기적이다. 어느날 문득 만나서 삶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소주를 한잔씩 곁들일 때도 있다. 이들은 시작(詩作)의 치열성에 비해 대외적인 활동에는 매우 소극적이다. 유난히 밖으로 드러나기를 꺼려하는 성향 때문에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없다. 지난해 청송 주산지를 다녀왔을 때도 그랬다. 함께 떠난 첫 여행이었지만, 풍경 사진 한 장만 달랑 찍어왔다.
모두가 외로운 시의 길을 걸을 뿐이다. '시·열림'이라는 울타리를 두른 지 7년째. 또다시 신춘문예의 계절은 다가오고, 7번째 동인지 출간도 앞두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다. 시의 위상이 좀더 향상되고, 시를 쓰고 읽는 일이 행복한 삶의 길을 여는 통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날 신춘(新春)의 아침처럼, 새로운 시의 아침과 '시·열림'의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