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교육-죽은 공명과 산 중달

교육계의 판도가 자동변속기 차량만 운전한 사람에게 수동 차량을 맡긴 것처럼 갈팡질팡한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요즘 대학입시를 보면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다'는 고사가 절로 떠오른다. 제갈공명이 죽은 사실을 알고 오장원으로 돌진하던 사마중달이 공명의 목각 인형과 양의의 체계적인 후퇴에 놀라 철수한 데 대한 오늘날의 해석은 여럿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삼국지연의의 상식으로 보면 공명이란 이름은 죽어서도 힘을 발휘하는 놀라운 존재다.

현 대학입시 구조에서 서울대는 냉정하게 말해 죽은 공명에 가깝다. 한때 서울대 인문대 수준에 머물던 고려대 법학과, 연세대 사회계열의 합격선이 서울대 법학과의 턱밑까지 올라왔다. 이공계 학과는 지방 사립대 의대와 한의대 합격선의 발치로 떨어졌고, 그나마 포스텍(포항공대), KAIST 등과 중복 합격생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판이다. 졸업 후 진로에 민감한 학생, 학부모들을 서울대라는 간판만으로 끌어당기기엔 힘을 잃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최근엔 죽은 공명이 개가를 올릴지도 모를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사단은 지난 9월 한 일간지가 전국 고교별 서울대 입학생 숫자를 소상하게 발표하면서 비롯됐다. 그 신문은 학교 간 선의의 경쟁을 장려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보도라며 스스로 금칠까지 했다. 여타 신문들이 고교 서열화를 막기 위해 1997년부터 시행한 보도강령을 깬 부도덕한 기사라고 비난했지만 이미 때 늦은 일이었다. 서울대 입학생을 많이 낸 고교와 동문들은 의기양양한 반면 예전보다 줄어든 학교 관계자들의 어깨는 처지다 못해 내려앉았다. 입학생을 내지 못한 학교는 시쳇말로 '따라지' 취급을 받아야 했다.

서울대보다 더 잘 나가는 의약계열 입학생 숫자는 변명으로 비쳤다. 포스텍이나 경찰대 등은 말할 것도 없다. 고교의 학력을 가장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인 수능 성적조차 거들떠봐 주지 않았다. 참으로 억울한 노릇. '죽었든 살았든 공명은 무섭다'는 고사가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수능시험을 보름 앞둔 현재 공명은 분명 살아났다. 대도시든 시골이든 고교 진학 담당자들에게 '서울대 합격생 일정 수 확보'라는 과제가 말없이 주어졌다. 동문이나 학부모들의 눈총이 거센 학교 교사들은 죽을 맛을 토로했다. 서울의 한 고교 연구부장은 "목이 떨어질까 겁난다"고 했다. 자연계 1등에서 3등까지 모두 포스텍 수시모집에 최종 합격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서울대 수시 1단계를 통과해 필요도 없는 수능시험을 치라고 강요 반 사정 반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소 도시 일부 고교는 아예 서울대 합격 가능성이 있는 몇 명에게 집중적으로 신경을 쏟는다고 한다.

역사를 보면 공명은 유약한 유비 부자의 밑에서 노심초사하다 장수하지 못했지만 중달은 오래 권력을 누렸다. 손자 대에는 위(魏)를 밀어내고 진(晉)의 황제까지 올랐다. 정치적 견제를 막기 위해 죽은 공명과 산 중달의 이야기를 사마중달 스스로 퍼뜨렸다는 얘기도 있는 걸 보면 공명의 전략만이 최고라고 보기도 힘들 듯하다. 그런데도 죽은 공명이 득세하는 걸 보면 교육계는 지금 후진 기어가 들어갔음에 틀림없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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