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7년 11월 22일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가 이끄는 4척의 선대가 아프리카 남단 '폭풍의 곶'을 도는 항해를 감행했다. 1488년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석주를 세우고 귀환한 바로 그 장소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 같은 해 7월 8일 170명의 선원들과 인도항로 개척이라는 사명을 갖고 리스본항을 떠난 지 4개월여 만이었다.
다 가마 선대의 모험은 당시 유럽의 동방무역에 획기적인 일이었다. '항해왕' 엔리케의 꿈이 그의 사후 20여 년 만에 현실화의 기반을 놓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1499년 항해 시작 26개월 만에 귀항했을 때 왕인 후안 2세는 '폭풍의 곶'을 아예 '희망의 곶(Cabo da Boa Esperana)'으로 개명하기까지 했다. 다 가마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귀족이 되고 연금까지 받았다.
새로운 항로 개척이었던 만큼 다 가마 선대의 항해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긴 항해로 인한 영양분 부족과 질병, 이슬람 국가들의 경계도 조심해야 했다. 인도와의 독점무역에 위협을 느낀 이슬람 상인들의 방해도 받았다. 돌아가는 길에는 폭풍우 등으로 선원의 절반을 잃어야만 했다.불굴의 도전 정신이 아니었다면 이뤄지지 않을 업적이었다.
▲1337년 고려말 문신 정몽주 출생 ▲1999년 야구선수 선동열 은퇴 선언.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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