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문명의 바다를 가다/ 박상진 엮음/ 한길사 펴냄
면적 296만9천㎢, 평균 수심 1천458m, 길이 약 4천km, 최대너비 약 1천600km, 체적 약 370만㎦, 최대 수심 4천92m. 뜨거운 태양 아래 눈부시게 푸른 빛을 자랑하는 '거의 폐쇄된 바다' 지중해. 지브롤터라는 서쪽 입구의 극히 제한된 통로만이 바깥 바다와 연결돼 하나의 '물바가지 형상'을 띄고 있는 지중해를 빼놓고 서양사를 논할 수는 없다.
지도에서 지중해를 살펴 보면 그 이유를 쉽사리 눈치챌 수 있다. 북쪽으로 유럽, 남쪽으로 아프리카, 동쪽으로 아시아와 연결된 곳이 바로 지중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바다를 중심으로 고대 페니키아로부터 로마 제국, 비잔티움, 오스만 투르크 등 숱한 제국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이런 이유로 지중해는 바로 대륙간 문명과 문화 전달의 매개체가 돼왔다.
하지만 문명의 현장을 이야기할 때 항상 다뤄지는 지중해의 역사는 우리가 바라본 역사는 아니었다. 서구의 시각으로 쓰여진 정보를 갖고 학습을 했을 뿐이다. 이 책은 '우리의 시선으로 읽어낸 지중해는 어떻게 쓰일 수 있는가'란 질문에서 시작됐다. 13명의 저자들은 과거의 제국들과 지중해의 관계, 지중해의 종교와 문화, 지중해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해양생태학적 특성 등 지중해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살피고 있다.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Mare Nostrum)'라고 불렀던 고대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꿈의 무대였던 비잔티움, 기독교와 끊임없이 주도권을 다투었던 오스만 투르크, 이슬람과 유럽 문명의 대표적인 교차점인 에스파냐, 지중해 논의에서 소외되기 쉬운 아프리카까지…. '문명과 역사의 교차점'으로서의 지중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속에는 무역의 행로로, 종교와 문명의 전달 매개로, 영역 확장을 위한 격렬한 전장으로서 역할했던 지중해가 있다.
지중해에는 물자 교류와 전쟁의 역사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그리스와 로마의 여러 신들과 유대교·기독교·이슬람의 유일신들이 나타나고 성장하고 지배한 곳도 바로 지중해였다. 사람들은 지중해를 통해 이들의 종교와 신화를 실어나르면서 지중해 전반에 걸쳐 공통의 문명을 키웠다.
풍요로운 문화와 예술의 영감을 던져준 것도 지중해가 미친 영향 중의 하나다. 피카소는 지중해의 햇빛과 바다를 사랑했다. 그의 작품 때문에 지중해는 예술로 승화됐고 영원히 변치 않는 빛을 지니게 됐다. 카뮈도 지중해를 통해 성장한 작가다. 그는 지중해가 지니고 있는 강렬한 햇빛과 그와 상응해 존재했던 진한 그림자로부터 받은 영감을 문학 속에서 빛과 어둠의 부조리로 재탄생시켰다.
그러나 지난 날의 역사가 오늘의 사회에서 새로운 의미를 지니듯 저자들은 과거의 지중해를 살펴보는 것으로 끝을 맺지는 않는다. 이들은 지중해라는 이름이 사실 7세기 이전까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수단 지역이나 서부 아프리카 사헬 지역, 그리고 고대 오리엔트와 서유럽, 심지어 북유럽 일부까지 걸치는 광의의 개념을 지니고 있었음에 주목한다. 이는 곧 지중해의 영향이 아메리카 대륙과 인도, 아시아까지 세계 인류 전체에 미쳤음을 의미한다. 이를 확대하면 지중해라는 모델이 바다와 육지를 넘나들며 문명이 소통됐던 모델을 어느 지역에나 적용시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우리나라에 적용시킬 수 있는 모델로 '동아지중해(東亞地中海)'가 제시된다. 지중해(地中海), 즉 '땅에 둘러싸인 바다'라는 개념에서 동아시아는 충분히 그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 낀 비교적 작은 면적의 '다국간 지중해'에 해당한다. 넓은 바다를 이용하는 해양력(海洋力)이 제값을 발휘할 수 있는 지역이다.
동아지중해의 중핵으로 중요한 해로를 장악하고, 모든 지역과 국가를 전체적으로 연결하는 해양 네트워크로 해양조정력을 발휘할 경우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힘을 키우고 이익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우리의 역사가 중국의 주변부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역사의 중심부로 우뚝 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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