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2006학년도 대입 정시모집 원서 접수가 마감된다. 대학별 전형이 남아있긴 하지만 대학입시라는 긴 여정에 제대로 마침표를 찍는 날이다. 그렇게 보면 지난 며칠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참으로 고된 날들이었을 것이다. 많은 입시기관들이 내놓은 배치기준표에다 수능 점수와 내신 성적을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고, 3개의 모집군별로 지원할 대학을 이리 조합하고 저리 조합해 결정을 내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다.
이 시기에 고교와 학원의 상담실을 들락거리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몇 점만 더 받았으면…"이다. 뒤에 붙는 말도 가지가지이고, 말하는 표정도 각양각색이지만 열에 아홉 아니 백에 구십아홉은 모자라는 몇 점에 대한 탄식이 앞선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원하는 대학의 학과에 "이걸로 충분해" 하며 원서를 낼 수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어느 학과든 합격할 수 있는 최상위권의 몇몇, 일찌감치 정해둔 지망 학과에 합격할 수 있는 충분한 점수를 받은 몇몇이 고작이다.
두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몇 점만 더'는 결코 입에서 떨어질 수 없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학과에 가고 싶은 건 전국의 모든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똑같이 해당되기 때문이다. "몇 점만 더 받았으면 이 걱정 안 할 텐데" 하며 아들의 뒤통수를 쥐어박는 아버지는 설령 몇 점을 더 받았어도 마찬가지로 아들의 뒤통수를 쥐어박게 만드는 것이 현재의 입시제도다.
더욱 안타까운 건 이 노릇을 며칠 내내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자신의 수능 점수와 내신 성적을 놓고 보면 지원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다. 배치기준표에서 한 칸을 올려 소신지원하느냐, 한 칸을 내려 안전지원하느냐의 결정만 필요할 뿐 어디에 가서 상담해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학부모들은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고 심지어는 인터넷이나 전화 상담, 수십만 원대 고액 상담도 마다않는다. 지켜보기 딱할 정도지만 학부모 스스로 선택한 숙명이라고 여길 밖에 도리가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인지 배치기준표를 신문에 실은 이튿날인 지난 금요일 걸려온 전화 한 통의 신선한 기억은 내내 지워지지 않는다. 수험생 아버지라고 밝힌 그는 "아들이 지원하려는 학과의 예상 합격선에 점수가 많이 남아 다행"이라며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다. 내막을 물으니, 수능시험을 치른 아들을 처음으로 자신이 근무하는 자동차 부품 업체에 데려가 구경시켰더니 며칠을 말없이 허드렛일을 하고는 자동차 관련 학과에 진학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평생을 잘 해온 일이니 저도 잘 할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은 엔지니어도 될 수 있을 거라는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라는 그의 말 속엔 평생 처음 느낀 듯한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몇 점만 더'가 아니라 '이걸로 충분해'를 선택한 그들 부자의 행복은 오래도록 많은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진정한 배치기준표였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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