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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날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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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5월 2일 실시된 총선거(4대 민의원 선거)는 집권 자유당을 절박하게 만들었다. 야당인 민주당이 개헌저지선(78석)을 넘는 79석을 얻은 것이다. 3대 국회에서 무소속 입당자를 포함해서 46석에 불과했던 민주당으로선 대약진이었다. 당연히 정권 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됐다.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의 전횡과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적 염증이 눈덩이처럼 커진 것이다.

◇자유당은 다가오는 1960년 정'부통령 선거를 유리하게 치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그 무렵 추진한 것이 신국가보안법 제정이다. 북한의 간첩 색출과 간접 침략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대공 사찰과 언론 통제를 한층 강화한 법안이었다. 야당과 언론은 이를 반정부 세력에 대한 탄압과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반민주 법안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자유당은 야당의 원내외 투쟁과 들끓는 민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연일 여야간 난투극이 벌어지던 법사위에서 12월 19일 자유당은 야당 의원들이 식사하러 나간 사이 법안을 기습 통과시켰다. 여세를 몰아 자유당은 12월 24일 무효를 주장하며 본회의장에서 무기한 농성 중인 야당 의원들을 경호권을 발동해서 몰아낸 뒤, 본회의를 열어 일방적으로 보안법을 통과시켰다.

◇'24보안법 파동'이라 불리는 보안법 통과 과정의 변칙적 기습 처리는 국회 날치기의 못된 전범이자 효시로 여겨진다. 난투극과 농성, 경호권 발동과 기습 처리, 그리고 장외 투쟁. 이런 행태는 그 후 필요할 적마다 재연됐다. 특히 연말 날치기는 거의 관례처럼 이어졌다. 예산안 투쟁이 야당의 큰 무기 중 하나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싹쓸이 통과로 새해를 맞으려는 여당의 욕심 또한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민주적이어야 할 민의의 전당은 정파의 욕심에 의해 수시로 가장 비민주적인 날치기의 온상으로 돌변했다. 사학법 날치기 처리가 야당을 장외 투쟁으로 내몰았는데, 또 어이없게도 대구시'경북도 의회가 기초의원 선거구 획정안 날치기 처리로 연말 지방 정가에 파란을 몰아왔다. 날치기 처리를 규탄하는 한나라당이 날치기를 연출했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여든 야든 정치적 모리배는 안 된다. 날치기를 만든 자유당은 1960년 4'19를 불러 멸망했다.

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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