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황우석 박사

올해도 예외 아니게 다사다난했지만 여느 해보다도 암울하고 불행한 사건들이 많았던 한 해였다. 그 중에서 황우석 박사와 줄기세포 파동은 단연 토픽이다. 고수준의 방대한 인적 물적 자산의 붕락과 함께, 한껏 높여 놓은 기대치를 일거에 무너뜨린 충격은 가히 세계적이다.

황 박사와 섀튼과 연구원들, PD와 방송들과 신문들, 정부'청와대 고위관리들과 정치인, 서울대와 피츠버그대와 미즈메디병원, 또 의사와 수의사 등 최고의 엘리트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반전을 거듭하다 클라이맥스에서 사람들을 경악과 탄식의 질곡으로 몰아간 잘 짜여진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 과정과 마디마다 갖가지 한국적 병리현상이 여과 없이 드러나고 인간의 오만과 탐욕이 적나라하게 보여졌다.

아직 종합적인 결론이 나진 않았지만 스너피가 복제 개로 확인되는 등 남은 것들에서 일부 긍정적인 부분이 도출되더라도 기왕에 드러난 것만으로도 추기경의 눈물이 웅변하듯 참담함과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생명윤리 문제를 접고 보면, 황 박사는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영웅'이었다. 배아줄기세포로 모든 난치병을 고칠 수 있을 듯이, 그 날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 듯이 선전했기에 환자들의 기대는 물론 세계인의 높은 관심은 너무 당연했다. 황 박사 스스로도 하늘이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주었다며 감격해 했다. 흥분하기는 정부도 마찬가지여서 최고 과학자상을 만들어 황 박사에게 1호의 영광을 주고 국빈급 경호에, 예산은 거의 쓰고 싶은 만큼 쓰도록 배려했다. 노벨상도 멀리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 과학자는 무엇이 아쉬워 금단의 길로 들어선 것일까. 머잖아 드러날 조작과 허언을 마다 않고, 성체 줄기세포 등 대안이 있음에도 굳이 배아 줄기세포에 집착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오만과 탐욕이 아니고선 설명되지 않는다.

생명의 신비를 젓가락 기법으로 눌러가며 찢어내는 오만과 탐욕이 주범이다. 탐욕은 끝내 몰락을 낳는다. 몰락하지 않으면 인류에 더 큰 재앙으로 닥칠 뿐이다.

지난해 12월 말 순식간에 22만 명의 인명을 앗아간 지진 해일에 이어 올해도 대형 자연 재해가 속출했다. 지난 8월 초특급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 연안을 강타, 사망'실종자가 8천 명에 이르렀고, 10월엔 파키스탄 국경 지역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9만 명 가까이 목숨을 잃고 350만 명이 이재민이 됐다. 또 갈수록 심해지는 여름 혹서와 겨울 혹한, 눈사태 등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급속히 불려가고 있다.

이처럼 빈발하는 대형 자연 재해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이 주원인이다. 지구 온난화는 다름 아닌 인간의 오만과 탐욕이 부른 결과물이다. 겸손과 절제를 모르는 끝 간 데 없는 오만과 탐욕이 자연의 기본 질서마저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오고 있는 조류독감과 에이즈'사스'광우병 등 신종 질병도 마찬가지다.

엉뚱한 사태 급변으로 배아 줄기세포 연구의 생명 윤리 문제가 가려졌지만 이제는 생명 윤리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 생명을 죽여 다른 생명을 연장하는 과학이 인간의, 인간을 위한 과학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비약하자면, 인육이 주식이 되는 말세의 단초가 담긴 판도라의 상자를 만지작거리는 듯한 공포감은 전혀 없는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황 박사는 무너졌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황 박사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 생명의 원천에 과학적으로 가장 가까이 접근해 갔던 사람이고, 생명의 아픔이 얼마나 통절한 것인지 지금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만과 탐욕이 멸망한 자리에서 아주 미세한 세포 하나가 자라날 수 있다. 그것을 난도질하지 않는 한 생명은 신비롭게 살아날 것이다. 황 박사가 생명의 신비와 존엄성을 증언하는 최고의 과학자로 부활하기를 기대한다.

金才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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