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전설'(2004)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박풍식(이성재)이 고등학교 동창 만수(김수로)로부터 사교댄스를 배우며 첫발을 내딛자 바람이 풍식의 온몸을 휘감는다. 운명적인 느낌에 풍식은 전국 최고의 춤꾼이 되기 위한 긴 여정을 떠난다.
대구 유일의 프로 탭댄서팀 '탭워크'의 팀장 원대일(28) 씨도 풍식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9년 전 우방랜드 공연팀 선배였던 김용수(현 무대감독이자 뮤지컬 배우) 씨가 추는 탭댄스를 봤을 때 원씨에게도 알 수 없는 바람이 불었다.
"무언가에 뇌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내가 꼭 저걸 해야겠다'는 마음이 불쑥 생겨나더군요."
당시 원씨는 이미 대단한 춤꾼이었다. 원씨는 이미 여섯 살때부터 힙합을 추기 시작했다. 대구에서 알아주는 춤꾼이었던 형의 영향이었다. 친구들과 만든 팀 공연으로 동성로축제나 각종 대회에서 수 차례 우승했다. 1995년 두류공원에서 열린 어울마당 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전국 본선에 나갈 기회도 잡은 원씨였다.
힙합이 모든 것이었던 원씨는 탭댄스의 세계로 빠져들면서 새로운 춤 인생을 시작했다. 근무하는 틈틈이, 퇴근 시간 이후에도 탭 연습이 계속됐다. 하루 1천 번이 넘게 바닥을 치는 고된 시간들이었다.
선배 김씨가 상경하면서 연습은 더욱 힘들어졌다. 혼자 남게 된 원씨는 비디오를 보며 스스로 익히기를 되풀이했다. 외로운 독학의 나날, 원씨는 이 시기를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기억하고 있었다.
결국 원씨는 탭댄스를 제대로 배워보겠다며 직접 서울로 올라갔다. 1년 여 세월 동안 많은 것을 배우려 노력했다. 공연도 뛸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뛰었다. 그리고 대구로 돌아왔다.
대구로 돌아와서 원씨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대구 바닥에 탭댄스를 알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방랜드 공연팀 7명과 함께 탭댄스 팀을 구성해 3, 4년간 탭댄스 공연을 계속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펼쳐지는 현란한 발놀림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원씨는 2001년 탭댄스 전문팀 '탭워크'를 만들었다. 전문적으로 탭댄스를 추기 위해서였다. 팀이라고 해봤자 원씨를 포함해 달랑 2명뿐이었다. 이때부터 대구 곳곳에 탭댄스를 홍보하기 위한 고군분투가 시작됐다.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공연을 했다. 탭댄스 강습도 시작했다.
2002년 3월 춤동호회 DIP라는 곳에서 처음 강습을 개설했다. 첫 수업의 결과는 참담할 정도였다. 수강생이 한둘에 불과했다. 그래도 낙담하지 않고 강습을 이어나갔다. 조금씩 입소문이 나면서 수강생도 늘었다. 많을 때는 30명이 들었을 정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괜찮은 춤꾼들도 발견했다.
DIP에서 만난 춤꾼들과 공연팀을 꾸려 공연도 여러 번 했다. 지난 10월 열린 지역혁신박람회 문화행사 '아마티스트' 부문에 출전해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들 중 몇 명은 이제 탭워크 팀원으로 원씨와 함께 프로의 길을 걷고 있다. 서울을 제외하고는 부산과 함께 2군데뿐인 프로 탭댄스 팀이다. 이제 팀원이 9명까지 늘어나 더욱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반도 생겼다.
9년간의 탭댄서 인생인 만큼 기억에 남는 일들도 많았다. 공연 도중 스피커가 꺼져서 헤맸던 일, 구두에 징이 빠져 새 구두를 신고 추다 뒤꿈치에 피가 난 일, 밤새워 편집한 공연음악을 한순간에 날려 눈물난 일 등이 원씨에겐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내년은 원씨에게 새로운 전환기가 될 것 같다. 대명동에서 대구탭댄스아카데미라는 전문 강습소를 운영하면서 대구에 탭댄스를 '확실히' 알리겠다고 각오했기 때문이다. 원씨는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며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공연연출가가 꿈인 원씨는 우리 나이로 서른이 되는 내년에 탭댄스를 기본으로 한 리듬 퍼포먼스를 창작해 무대에 올리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힙합은 물론 살사에 스윙, 탭댄스까지 춤은 물론이고 안무·음악 등 다재다능을 뽐내는 원씨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원씨는 "동호인이 1천 명을 넘어선 서울은 내년 탭댄스페스티벌을 추진하고 있다"며 "대구에서도 탭댄스 인구를 늘리는데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고 다시 한번 굳게 다짐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사진:대구에 탭댄스를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인 탭댄서 원대일 씨가 멋지게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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