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해 여객선 참사는 최악 인재

1천여 명의 실종·사망자를 내 이집트에서 사상 최악의 해상 참사로 기록된 홍해 여객선 침몰사고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이집트 당국의 초기 조사결과 이번 참사는 선장과 승무원들이 제대로 판단하고 대처했더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인재(人災)로 확인되고 있다.

◇죽음의 항해=1만1천800t급 카페리 여객선 알 살람 보카치오 98호는 2일 오후 6시30분께(현지시간) 사우디의 두바항에서 닻을 올렸다. 1천400여 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탄 이 배에는 220여 대의 자동차가 실려 있었다. 초기 항해는 바람이 다소 거세게 불고 파도는 높았지만 대체로 순조로웠다. 그러나 출항 후 1시간30분에서 2시간 남짓 지났을 때 문제가 생겼다.

자동차가 실려있던 화물 칸(엔진룸이라는 증언도 있음)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선장은 첫 화재 보고를 받은 뒤 두바항으로 회항을 명령했다. 화재가 처음 목격된 지점은 두바항에서 20, 30마일 정도의 거리였다.생존자들은 이 거리에 대해 두바항이 맨눈으로 보일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승무원들은 곧바로 화재가 진압됐다고 보고했고, 이에 선장은 철저히 확인하지 않은 채 기수를 다시 사파가항 쪽으로 돌리도록 했다.

◇승객들 "두바항으로 돌아가자"=AP통신이 전한 생존자 아흐메드 압델 와하브(30)의 말에 따르면 화재가 처음 발생했을 때 공포에 질린 승객들은 승무원에게 두바항으로 돌아가 도움을 요청하자고 요구했다. 그러나 승무원들은 모든 상황이 종료됐다며 승객들의 요구를 일축했다. 화재 발생 후 일부 승객이 공황상태에 빠지자 승무원들은 여성 승객들이 있던 선실의 문을 잠갔다고 와하브는 주장했다.

◇되살아 난 불씨=첫 화재 소동 후 사고 선박은 3, 4시간을 그대로 운항했다. 그런데 홍해 연안 이집트 항구도시 후르가다를 30∼60마일 앞둔 지점에서 불길이 급속히 되살아났다.승무원들이 애초 진압했다고 판단한 불씨가 항해 중 커져 있었던 것이다. 승무원들은 소화기를 총동원해 진화에 나섰지만 강풍이 부는 데다 높은 파도로 배가 심하게 흔들려 불길을 잡는 데 실패했다. 불길이 빠르게 배 전체로 번지면서 폭발음도 들렸고, 갑판과 선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실종된 직업윤리=일부 생존자들은 배가 침몰하기 시작한 뒤 구명보트에 제일 먼저 올라탄 사람이 선장이었다고 주장했다. 선장은 실종상태라 이 주장의 진위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일부 생존자들은 선장이 구명 보트에 올라탄 뒤 균형을 잃고 바닷물에 빠지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또 약 100명의 승무원들도 위기상황이 닥치자 승객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채 자신들의 살 길만을 도모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승객 약 1천300명 가운데 1천 명에 가까운 사람이 실종되거나 사망한 상황에서 승무원의 절반가량인 40여 명이 생존한 것으로 알려져 이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다.

◇선박 실종 확인과 부실한 사후 대처=사고선박 소유주인 알 살람 해상운송이 예정시간에 도착한다는 전문을 보내놓고 소식이 끊긴 알 살람호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한 시점은 3일 오전 5시께였다. 선주회사는 홍해항만청에 선박실종 사실을 보고하고, 인근 해역에서 운항 중이던 자사 선박인 세인트 캐서린호에 알 살람호와 접촉을 시도해 보라고 지시했다.

세인트 캐서린호는 구명보트에 탄 승무원 1명과 통화하는데 성공, 알 살람호가 침몰됐음을 확인했다. 사고신고를 접수한 이집트 당국은 3일 오전 8시께 구조헬기와 해군함정을 사고해역으로 급파했다. 이어 오전 10시께 구조팀은 사고해역 주변에서 구명보트에 탄 생존자 10여 명과 시신 여러 구를 처음 발견한 뒤 본격적인 구조·수색 작업에 들어갔다.침몰사고가 발생한 지 약 8시간 만으로, 바닷물에 내동댕이쳐진 대부분의 승객들은 이미 숨진 뒤였다.

카이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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