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꽃병의 꽃은 곧 시든다

"부귀와 명예가 '도덕'으로부터 온 것은 수풀 속의 꽃과 같아 저로 잎이 피고 뿌리가 뻗을 것이나, '권력'으로부터 얻은 것은 꽃병 속의 꽃과 같아서 그 뿌리가 심어지지 않은지라, 시듦을 서서 지켜볼 수 있으리라."

지난 주말 장관 감투를 쓴 일부 청문회 주인공들의 '부귀와 명예'를 보며 채근담의 이 도덕 구절을 생각해 본다.

그들은 과연 국민이 우러러볼 만한 진정한 부귀와 명예를 얻었는가. 그리고 그 명예들은 도덕으로부터 온 것일까 아니면 권력으로부터 얻은 것일까. 그들의 도덕성을 검증했던 청문회 의원들은 네편 내편 없이 입을 모아 바로 그 도덕성을 들어 '부적합'으로 심판했다.

대다수의 민심도 같은 심판을 했었다. 오직 한 사람, 권력을 쥔 임명권자만이 '적합'이라고 심판했다. 엇갈린 심판을 두고 봤을 때 일부 장관이 얻은 명예와 부귀는 아무리 봐도 도덕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권력으로부터 얻은 부귀와 명예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권력으로부터 얻은 것이니 꽃병 속의 뿌리 없는 꽃처럼 머지않아 곧 시들 것이라는 냉소 같은건 이미 부질없다.

음주운전 두 번이면 공직에 발도 못 들여 놓게 하겠다는 정부가 2건의 인사 사고와 14건의 교통 법규 위반 경력을 지닌 사람, 78번이나 교통 법규를 위반한 사람을 장관감이라고 우기는 식의 이상한 도덕기준을 따지는 것도 부질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패배적 냉소와 이불 속 용쓰기보다 민심의 힘을 통한 도덕성 회복이다.

당장 성년도 안 된 고교생들조차 입시 경쟁률을 낮추기 위해 사이버 테러 행위를 서슴지 않을 만큼 겁 없이 설치고 이기적이며 부도덕해져 가는 사회를 눈앞에서 보고 있다. 왜 10여 년 사이 세상이 이렇게 제멋대로 돌아가는 세상이 됐을까. 세상 겁날 게 없어졌기 때문이다.

겁 나는 상대, 그것이 민심이든 공권력이든 사회와 학교와 집안의 어른이든 최소한 눈치라도 한번쯤 봐야 할 만한 상징적인 '권위와 도덕'이 사라져 가기 때문이다.

경찰(공권력)은 쇠막대기 하나로 간단히 밀어 치면 청장 목도 뗄 수 있고 외화 벌고 실업 구제하는 기업체 사장은 머리띠 매고 나서면 제풀에 항복하든지 해외로 쫓기듯 떠나게 할 수 있는 세상에 권위가 있을 리 없다.

일부 과격 노조처럼 조합이란 우산 아래 편하게 챙길 것 최대한 많이 챙기고 해야 할 일 최대한 덜 해도 말릴 상대가 없는 세상에 도덕이 설 리 없다. 사장'교장'노동부장관이 돈짝만하게 보이는 세상에는 노조의 억대 취직 장사 같은 몰염치만 겁 없이 터질 뿐이다.

무엇이든 도덕으로 얻으려 하지 않고 권력과 이기집단의 '떼힘'으로 얻어 내고 챙기려 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권력으로 부귀와 명예'잇속을 얻으면 꽃병 속 꽃처럼 일찍 시드는 이치를 알지 못한다. 모르니까 아예 도덕 같은 건 겁 없이 무시한다.

권력을 쥔 자가 민심을 무섭게 여기지 않고 겁나는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것도 어찌 보면 민심이 제구실을 못하고 권위를 못 지킨 탓도 있다.

권력자의 입술과 궤변에 쉽게 속아 겁 없는 정권을 만들어 주는 민심은 어리석다. 그런 우중(愚衆)을 겁 내고 눈치 볼 바보 같은 권력은 없다. 그래서 때로 민심은 권력보다 더 깨 있어야 하고 대중은 오히려 권력보다 더 도덕적이어야 한다.

대중이 집단이기에 빠져 도덕성을 잃으면 권력자는 그런 대중이 만들어 내는 민심의 힘을 우습게 알게 되고 민심의 권위가 사라지면 그 다음엔 권력이 도덕성을 팽개치게 되는 것이다. 뒤늦게나마 입시 원서 사이버 테러 가담 학생들의 부도덕성을 합격 취소로 응징할 거라는 보도가 나왔다.

청문회 일부 장관의 도덕성 시비쯤 궤변으로 덮고 넘어가는 권력층의 도덕 불감증을 생각하면 '너는 바람풍' 같은 처사다. 그러나 철부지 고교생(민중)에게조차 도덕성을 요구하는 권력이라면 그들도 이제는 2년 뒤 꽃병 속의 시든 꽃이 될까 조금은 두려워할 것이다.

金廷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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