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의 배경
우리나라 대중 예술 작품이 중국과 베트남, 대만에 이어 일본에서까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소식에 가슴 벅찬 흥분을 이어갔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반한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비등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중국과 베트남 등지에서 시작된 한류의 역사는 길어야 10년이고, 동아시아 전체로 영향력이 확대된 것은 최근 2, 3년의 일이다. 그런데 벌써 아시아 각국의 반한류 움직임은 구체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 만화 '혐한류(嫌韓流)'에서 보듯 다소 유치해 보이는 수준에서부터 한국 드라마의 방송 시간 제한 조치 등 정책적인 차원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한류와 반한류 현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해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논제는 단기적인 수출 전술의 차원을 넘어서서 좀 더 근본적인 문제, 즉 민족·국가 간의 문화 교류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와 관련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문화 식민주의의 본질
먼저, 한류와 반한류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태도를 되짚어 보자. 왜냐하면 한류에 대한 우리 국민의 관심과 그 배경이야말로 한류를 성공시킨 동력인 동시에 빠르게 일고 있는 반한류 현상을 해명하는 결정적인 열쇠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과연 우리의 반응이 왜 남다르게 뜨거웠는가 하는 질문은 중요하다.
미국, 일본, 서유럽 등 이른바 선진국의 문화가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나라로 흐르는 것은 근대 이후 변함없는 관행이었다. 한류에 대한 우리 국민의 뜨거운 반응은 이러한 현상이 뒤집어졌다는 데 대한 신기함과 반가움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뒤집혀진 후진국 콤플렉스의 소산이었던 셈이다. 근대 이후 한 번도 남에게 이겨보지 못한 문화적 약소국의 위치에서 벗어나 남에게 팔 만한 문화적 생산물을 만들어 냈다는 자부심이 우리를 들뜨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 보자. 과연 이 한류 현상은 정당한가. 이 질문은 앞의 질문보다 답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왜냐하면 일본과 미국, 서유럽 등 선진국들로부터 문화의 강력한 영향을 받으면서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이나 균형감을 잃은 것에 대한 반성과 반발을 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이후 우리 영토를 식민지화하고 통치한 일본과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미국, 그리고 더 나아가 선진 자본주의 국가로서 전 세계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서유럽의 몇몇 국가들이 우리나라에 끼친 문화적 영향이란 일방적이었으며 강력했고 무엇보다도 지속적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 민족은 일본의 대중음악과 대중소설 등을 대대적으로 수용했다. 광복 이후에는 미국 영화와 TV 드라마, 팝음악의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이었다. 이러한 일방적이고도 강력한 영향력은 분명히 정상적인 문화 교류가 아닌 문화 식민주의적 현상이었다. 강대국의 문화가 약소국으로 일방적이고 지속적으로 흐르면서 약소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파괴하는 현상, 강대국의 문화는 우월하고 선진적이며 자신들의 문화는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현상, 약소국의 대중들이 스스로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강대국의 시선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현상 등 문화 식민주의적인 현상은 대부분 20세기 내내 우리나라 대중문화 속에서 늘 나타났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상당 부분 남아 있다.
문화 식민주의라고까지 이야기할 수 없다 하더라도 몇몇 나라들의 문화가 과도하게 한 나라의 문화를 점하는 현상은 분명 그 나라 문화 산업의 기반을 약화시키며 그 나라 국민의 가치관과 생활 감각 등에 과도한 영향을 미치면서 균형감을 깨뜨린다. 이러한 문화적 균형감 상실은 우리가 겪어본 바와 같이 그 사회로서는 당연히 극복해야 마땅하며 이를 단순히 국수주의라 손가락질할 수는 없는 것이다.
▨ 한류와 문화 식민주의
물론 한류를 문화 식민주의적 현상으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중국과 베트남의 한류 현상이 우리나라의 차원 높은 근대화·산업화에 대한 부러움의 소산이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문화 상품뿐 아니라 소비재 등의 소비 촉진이나 한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에 기여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한편 타이완과 홍콩, 일본의 한류는 오히려 우리 대중문화 상품의 독특한 매력이 동아시아 시장에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태까지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던 한국의 문화가, 그것도 영화나 음반과 달리 TV 드라마처럼 일상 공간을 바로 장악하는 방식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 그 사회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나라 기성세대가 미국이나 서구의 팝 스타들 앞에서 환호하는 10대의 열광을 '광란' 취급했듯이 중국이나 베트남의 기성세대가 한국 댄스뮤직 가수들에 열광하는 10대를 우려의 눈으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맥락에서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일고 있는 반한류는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현상이다. 한국 대중문화가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과 다양성, 문화적 균형을 깨뜨린다고 판단한다면, 이는 그들로서는 정당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반한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우리가 갈 길을 방해한다거나 이득을 줄일 것이라는 수준에 머문다면 오히려 잘못이다. 우리가 꼭 다른 나라를 이겨야 한다는 생각, 우리 것이 최고라는 생각, 외국 시장을 전부 장악해야 한다는 생각은 편협한 국수주의적인 시각이다.
▨ 한류의 바람직한 방향
한류가 의미 있는 것으로 지속되려면 단지 우리에게만 이득이 될 게 아니라 동아시아 대중문화 시장 속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우리 대중문화가 일방적이고 폭압적인 영향력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적 균형감을 깨뜨릴 정도로 시장을 장악한다면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상대방에 해를 끼치면서 우리가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야말로 장기적으로 볼 때 평화와 공존을 깨뜨려 결국은 우리까지 자멸하게 만드는 위험한 사고이다.
한류는 궁극적으로 아시아와 전 세계 대중문화의 다양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류가 확산되고 진전됨에 따라 우리의 문화 교류 대상이 넓어지고 우리 역시 상대편 문화에 대한 넓은 수용 태도를 가져야 한다. 우리의 다양한 문화 수용력은 다시 우리 문화를 발전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여기에서 우려되는 것이 우리나라 국민의 태도이다. 한국방송(KBS)이 중국 방송사가 제작한 '칭기즈칸'을 수입·방영한 것에 대해 대중들이 거센 비판을 쏟아 붓는다거나, 동아시아권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해 관심도가 낮은 것은 우리가 관용적이지 못하고 폐쇄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류의 발전과 확산이 이루어지는 만큼 우리 역시 훨씬 더 활발하게 다른 나라들과의 문화 교류를 증진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합작이나 협력 등의 활발한 교류는 우리 문화 발전의 밑거름이 되며 나아가 한류 확산의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다.
한류는 자랑스러운 것이고 반한류는 기분 나쁜 것이라는 감정적인 태도는 한류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초기 한류 현상에 지나치게 흥분한 언론이나 정치권이 한류를 지원한다고 외치면서 오히려 상대 국가에 문화적 경계심과 반감을 만들어낸 것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동아시아, 아니 세계의 문화 전체를 조망하는 폭넓은 시야가 필요한 시점이다.
▲ 혐한류
일본에서 일고 있는 안티 한류 열풍을 지칭하는 말이며, 지난해 7월 발간된 만화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악의적으로 비하·왜곡하는 내용을 담은 '혐한류'는 발매 5일 만에 초판 10만 부가 동이 날 정도로 일본인들 사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한류 열풍에 대한 외국 언론의 비판과 일본 보수·우익 언론의 반박 사태 등이 맞물려 수면 하에 감춰져 있던 뿌리 깊은 혐한 감정이 다시 조명받게 된 것이다.
▲ 문화 식민주의
문화 제국주의 또는 신식민주의라고도 한다. 과거의 종속국이 독립하려 할 때 겉으로는 독립을 돕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배후에서 이들 국가들을 조종함으로써 과거의 제국주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방향으로 바뀌었는데 이를 신식민주의라고 한다. 1990년대 이후에는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문화 식민주의가 더욱 노골화되어 많은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자국의 문화를 타국에 침투시키는 데 힘을 쏟아 왔다. 특히 경제력과 정보력이 막강한 미국을 비롯해 경제 대국들은 세계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정보를 받아 볼 수 있는 인터넷의 장점을 이용해 자국의 문화를 알리는 데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 국수주의
극단적인 국가주의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며, 타민족·타국가에 대하여 배타적·초월적 성격을 지닌다. 역사적인 실례로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의 국수 보존 사상,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을 들 수 있다. 국수주의의 주장에 따르면 종족 집단은 역사적 형성과 함께 생겨난 종족(민족) 문화가 외래의 이질 문화에 위협받을 때 스스로 '문화 방위'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 따라서 이질 문화의 침입을 방어하는 '토착주의'라고 하는 운동이 일어나며, 이 운동은 단순한 정신 운동으로 그치지 않고 전통적 사회의 혁신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제공 : 이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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