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슈 따라잡기> 러시아-우크라이나 가스 분쟁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무기로 주변 국가들을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1월1일부터 우크라이나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 우크라이나 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 국가들을 불안으로 몰아넣었다. 가스 공급 중단 사태는 4일 만에 양국 간의 합의로 극적으로 타결됐지만, 이번 사태를 지켜본 전 세계 국가들에 에너지(원유, 가스 등) 무기화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번 사태의 배경을 놓고 러시아는 경제논리를 앞세웠고, 우크라이나는 정치 논리를 펼쳤다. 이들 두 국가가 내세운 주장은 무엇이었고, 이들의 주장이 과연 타당성이 있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에너지 무기화에 대처하는 효과적인 방안을 생각해 보자.

▨ 이슈의 배경

총성 없는 에너지 전쟁이 신년 벽두를 갈랐다. 러시아는 2006년 1월 1일부터 우크라이나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 양국 간에 에너지 분쟁이 촉발됐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구소련 블록에 속했던 국가다. 냉전이 끝나고 1990년대 초 러시아로부터 독립했지만 여전히 1천㎥ 당 50달러의 '특혜 가격'으로 가스를 공급받았다. 하지만 2005년 러시아의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이 1천㎥ 당 230달러로 4배 이상 인상할 것을 요구하자 우크라이나는 이를 거부했고, 러시아측은 급기야 가스 수출용 파이프라인을 잠근 것이다.

엄동설한에 갑자기 가스 공급이 급격히 줄어든 우크라이나는 긴급 에너지 수급 대책을 세우는 한편, 러시아의 조치가 경제 논리를 가장한 정치 논리라면서 비난하고 나섰다. 러시아는 순전히 경제 논리라면서 냉전 시절의 특혜 가격을 더 이상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두 나라 간의 천연 가스 분쟁은 러시아-우크라이나를 잇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러시아산 가스를 수입하고 있던 유럽 각국에도 긴박한 비상 상황을 야기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새로운 가격에 극적으로 합의, 사흘 만에 천연가스 공급을 재개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세계로 하여금 자원대국 러시아의 위력을 새삼 깨닫게 했다. 경제 논리와 정치 논리가 뒤섞인 국제정치학의 냉혹한 현실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주장은 무엇이었으며, 우크라이나의 대응 논리는 무엇이었을까. 또 이번 분쟁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 우크라이나-"정치 논리다"

가스 분쟁의 직접적인 계기는 양국 간 가격 논쟁이었다. 가스 값을 놓고 서로 흥정하다가 합의점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공급해 온 천연가스 1천㎥ 당 50달러의 특혜 가격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면서 2005년 6월 종전 가격의 3.2배에 달하는 1천㎥ 당 160달러를 제시했고 우크라이나는 협상을 거부했다. 이에 러시아는 아예 국제공급 가격인 1천㎥ 당 230달러를 제시하고 나섰다.

우크라이나가 협상을 거부한 배경은 크게 두 가지였다. 어느 정도 가격을 올릴 수는 있지만 4배 이상으로 갑자기 인상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지켰다. 또 유럽으로 수출하는 러시아 천연가스의 90% 가까이가 우크라이나 영토 위의 파이프라인을 통과하는 만큼 자국용 가스 가격에 대해 특혜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크라이나가 내세운 두 번째 논리는 러시아가 겉으로는 가격 문제를 논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갑작스런 가격 인상을 빌미로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영향권 내에 두겠다는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 러시아가 시장 논리가 아니라 국가별로 가깝고 먼 관계에 따라 '고무줄 가격'을 적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구소련에 속했던 일부 국가들에 대해 여전히 국제 시세보다 낮은 특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의 논리가 틀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서방 언론 역시 러시아가 정치적인 의도에서 우크라이나 길들이기에 들어갔다는 시각을 보였다. 특히 지난해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밀던 후보가 탈락하고 친서방 성향의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이 집권한 데 대해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놓고 압력을 가한다는 시각이 주류를 이뤘다. 유셴코는 집권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희망 의사를 밝히는 등 러시아의 심기를 거슬러왔던 게 사실이다.

▨ 러시아-"경제 논리다"

러시아는 가격 인상 요구가 순전히 경제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으로 일관했다. 천연 가스의 국제 가격이 1천㎥ 당 250달러인 만큼 시장 가격에 가깝게 현실화했을 뿐이라는 논리다. 이 논리만 놓고 보면 러시아의 주장이 백 번 옳다. 에너지를 수출하는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은 모두 시장 가격에 근거해 가격을 산정하고 있으며, 특정 국가가 경제 외적 논리로 특혜 가격을 요구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1970년대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 값을 갑자기 인상해서 두 차례나 오일파동이 일어났지만 결국 원유 수입국들은 인상된 가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는 여기에 우크라이나가 그동안 서유럽으로 가야 할 천연가스 78억㎥ 를 중도에 '좀도둑질'했다며 압박했다. 우크라이나는 자국영토를 지나는 파이프라인에서 일부 천연가스를 빼서 쓴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하면서도 러시아의 것을 빼낸 것은 아니라고 강변했지만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났다.

▨ 러시아-우크라이나 가스분쟁의 의미

러시아는 이번 사태를 통해 무형의 손실을 입었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국가로서의 신뢰도가 낮아진 것이 가장 큰 손실이다. 에너지도 상품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 나라의 존망이 걸린 전략상품인만큼 무작정 파이프라인을 잠그는 것은 사실상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의 이번 조치는 명백한 도발이었다. 냉전 시절에도 구소련은 유럽에 에너지를 수출했지만 이번처럼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적이 없다. 에너지 공급 국가가 상궤를 벗어나는 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느닷없이 공급을 중단한다면 어떠한 에너지 수입국가에도 신뢰를 주기 힘든 것이 분명하다.

이번 사태는 에너지를 도구로 자국의 외교안보적 이해를 추구하려는 러시아의 야망을 노출시킨 동시에 특정 국가의 에너지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경제도 안보도 위험해진다는 교훈을 남겼다. 경제 논리와 정치 논리가 얽혔지만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우크라이나, 냉전, 가즈프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빅토르 유셴코, 유럽연합(EU), 사회주의 계획경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 냉전이 격화되자 구소련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1949년 8월 서구 여러 나라가 결성한 정치적·군사적 동맹기구로, 본부는 브뤼셀에 있다. 가맹국의 안전보장을 목적으로 하며 1국 이상이 무력 공격을 당할 경우 이를 모든 가맹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즉시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고 이를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에 고발, 적당한 조치를 취하게 하며, 가입국 간의 경제 협력을 촉진한다. 미국, 영국, 독일, 스페인,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19개국이 가맹돼 있다.

▲흑해함대

통제권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심각한 마찰이 빚어지고 있는 구소련의 대표적인 함대. 우크라이나 크리미아 반도 세바스토폴 항을 모항으로 하는 이 함대는 지중해에서 미 6함대에 맞서는 전략적 기능을 수행해 왔다. 우크라이나는 자국 내에 기지를 두고 있는 흑해함대 중 비핵 탑재 전력은 우크라이나에 귀속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러시아는 독립국가연합(CIS)의 전략통합군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잠수함 14척, 순항함 10척, 구축함 3척, 호위함 22척, 연안초계함정 22척, 소해함정 26척, 상륙함정 19척 등을 보유하고 있다. 함대 산하 항공부대는 작전기 93대, 무장헬기 75대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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