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재에 걸리면 끝장"…무엇이 문제인가?

'문화재에 걸리면 끝장...'

지난 1999년 3만㎡ 이상 건설현장이나 문화재발굴 인근지역의 지표조사를 의무화하는 문화재보호법이 강화된 이후 불안에 떠는 업체·개인들이 많다.

매장문화재 지표조사기관이 턱없이 부족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3년 씩 순서를 기다려야 하고 문화재 보존지역으로 지정되면 사업 자체를 할 수 없기 때문. 비용도 사업자가 부담하기 때문에 '제 돈내고 목숨 맡기는 꼴'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학계에서도 "문화재로 인해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문화재의 적'으로 돌아서기 십상"이라면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민 피해도 수두룩

업체는 물론 서민들의 피해 사례도 적지 않다. 대형사업장에 조사가 집중돼다 보니 금액이 적은 소형상가·주택은 소홀히 취급되기 때문이다.

5년 전 문화재 발굴 인근 지역인 대구시 수성구에 식당을 짓기 위해 포도밭 200평을 샀던 이모(42)씨는 지표조사를 하는데 무려 2년이나 걸렸다. 그는 "당시 대형업체는 4, 5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규모가 적다는 이유로 계속 조사가 미뤄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씨가 지불한 지표조사 및 시굴·발굴 비용은 모두 4천만 원. 발굴된 문화재는 정부가 가져갔다. 그는 "'문화재 보존'이라는 명목으로 정부가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꼴"이라고 분개했다.

지난해 9월 주택을 짓기 위해 수성구 범어동에 땅을 산 송모(51) 씨는 요즘 애가 탄다. 문화재 출토지역이라 지표조사가 필요했지만 발굴기관이 "일이 밀려있다."며 6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조사에 착수했기 때문. 거기다 문화재 보존지역으로 지정되면 집을 지을 수도 없게 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설 대구의 한 공사현장. 매장문화재 발굴 조사가 한창인 이 곳에서 시행사 측은 공기를 맞출 수 있을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조사기관이 '당초 계약기간보다 1~2개월이 더 걸릴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

업체 관계자는 "공사가 한달 늦어질때 마다 금융 비용으로 수억원이 그냥 날아가는데 추가비용은 입주자에게 전가시킬 수 밖에 없다"며 "실제 문화재로 인해 수성구의 한 시행사는 수백억원의 이자를 날렸고 월배지역 공사장은 설계변경을 하는 등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전했다. 문화재보호법에 조사 과정의 모든 비용을 사업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어 이 업체도 20억원 가까운 비용을 고스란히 물게 됐다.

늘어나는 수요에 비해 조사기관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큰 문제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전국의 문화재 지표조사 기관은 124곳. 하지만 대학박물관, 대학연구소, 국·공립 박물관 등 80개가 넘는 대부분 기관이 인력부족으로 시굴 및 발굴조사는 손놓고 있다. 문화재청, 각 시·도의 허가를 받은 발굴전문기관 36곳이 지난해 1천 건에 달하는 문화재 조사 및 시·발굴을 도맡아 하다보니 일감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가.

국가 소유가 되는 문화재에 대한 조사를 민간 법인이 대행하면서 불거지는 문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로비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조사기간을 줄이고 싶다는게 건설업자들의 한결같은 얘기였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매일 전화하고 주기적으로 조사기관을 방문하고 집 앞에서 기다리는 업자가 한둘이 아니다."고 귀뜸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최근 2, 3년 사이 문화재 조사 기관이 10곳 이상 늘었고 올해만 6곳이 더 생겼다. 연구원 인력만 확보되면 고객이 몰려오는 '돈되는 사업'이다. 자격증 제도도 없어 조사보조원은 현장 경험 2년 이상, 연구원은 5년 이상 정도의 경력만 있으면 된다.

이상길 경남대 사학과 교수는 "국책사업, 택지사업, 재개발 등으로 최대의 호황기를 맡고 있는 발굴전문기관이 사적 이익을 채우는 경우가 알게모르게 많다."며 "하지만 조사 현장에서 이뤄지는 각종 문제를 감시하고 규제할 법적·제도적 장치는 전무하고 오로지 '학자, 발굴자로서의 양심'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조사기관이 '성역화'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업체들의 생사(?)를 좌우하는 탓에 권위적이고 불친절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는 것. 한 업체 관계자는 "하루가 아쉬운 판에 동·하절기에 시·발굴을 중단하거나 조사기간만 계속 늘이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면서 "다른 사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항의 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했다.

대가야박물관 신종환 관장은 "현재 착공 직전에 이뤄지는 문화재 조사 시점을 사업계획 시점으로 앞당길 필요가 있으며 간단한 지표조사·시굴은 대학박물관이 맡고 대규모 조사는 전문기관이 맡는 등 조사의 이원화가 시급하다"고 했다.

기획탐사팀=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