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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서쪽서 해 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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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어느 고승은 '사람의 목숨이 어디에 있느냐'는 농담 같은 질문을 즐겨 던졌었다. 상좌들은 답을 찾으려 머리를 쥐어짜야 했지만 번번이 틀렸다. '목숨은 한 숨 사이에 있다'가 정답이었다. 숨쉬기를 멈추면 죽게 되니 목숨도 숨과 숨 사이에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가르침의 깊은 뜻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불교가 오랜 세월 유지해 왔던 가르침이라고도 했다. 16일 서울 길상사에서는 법정 스님 또한 그렇게 가르쳤다고 한다. "행복은 앞으로 이뤄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누리는 것이다." 동쪽만 바라보고 있는 중생들에게 '서쪽에서도 해가 뜰 수 있다'고 생각 뒤집기를 요구하는 듯하다. 이렇게 중생들을 깨우쳐 주려 애쓰는 분들을 우리는 '큰 어른'으로 생각하고 의지한다. '영혼'뿐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큰 힘을 발휘하는 큰 어른이 계셔서 그 가르침 하나에 온 나라가 승복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기도 하다.

○…두 부분에서의 지도력을 모두 갖춘 큰 어른의 모습을 사람들은 흔히 달라이 라마에게서 발견한다. 그는 1960년대 어느 날 히말라야 고산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있던 자국 티베트의 한 유격대에 육성 녹음을 보냈다.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은 훌륭합니다. 그러나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나를 믿는다면 총을 버리고 망명해 오든지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가십시오." 유격대장은 부대를 해산하고 영예를 지키겠다며 자살했다.

○…이달 초에는 태국 푸미폰 국왕이 또 한 번 대단한 지도력을 보여줬다. 시위로 나라가 풍비박산 지경에 놓여도 퇴진을 거부하던 탁신 총리였지만 국왕의 뜻을 안 후엔 이의 없이 물러났던 것이다. 국왕의 그런 권위는 스스로 금도를 지키고 어려움을 국민과 함께함으로써 얻어진 것이었다. 평소 일반 국민을 만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작년 큰 가뭄이 닥쳤을 때는 일주일여 식음을 전폐하면서 비 내리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내에서는 정말 목불인견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세상에 기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큰 어른' 기다리기가 '큰 바위 얼굴' 심정이다. 금성처럼 서쪽에서 해가 뜨는 세상도 있다고 하니 꼭 난망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korea@ms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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