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방위 로비 흔적 남긴 현대차 '채무탕감'

검찰이 현대차 본사 압수수색 과정에서 찾아낸 '채무 탕감 보고서'에 현대차가 금융감독 당국과 산업은행 최고경영진을 상대로 채무 탕감을 위한 로비를 계획한 내용이 포함돼 수사가 확대 양상을 보이고 있다.

◇ '채무탕감 보고서'가 로비 밑그림 = 검찰은 17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박상배 전 산은 부총재와 이성근 산은캐피탈 사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에서 현대차 본사에서 압수한 디스켓에 들어있는 위아㈜ 채무탕감 보고서를 증거로 제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가 김동훈(57.구속)씨에게 41억6천만원이나 되는 거액을 제공한 이유는 위아㈜와 아주금속공업㈜의 부실채무를 탕감받기 위해서는 산은 실무자를 설득하기 이전에 산은 최고경영진 설득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당초 전문적인 구조조정전문회사(CRC)를 앞세워 부실채권 공매에 참여해 위아㈜와 아주금속공업㈜의 부실채권을 사들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자 결국 대형 회계법인 대표를 지낸 사람을 로비스트로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 보고서에는 채무 탕감을 위해 '사용처를 묻지 않는 비공식 경비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있는 등, 현대차 측이 '검은 돈'을 이용해 비정상적인 채무탕감 로비를 시도했음을 짐작케 하는 내용들이 담겨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채권 매각을 적법하게 처리했다는 산은측 해명을 "코멘트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일축하며 "당연하게 해줘야 될 일을 돈을 주면서, 죄를 지으면서까지 부탁할 필요가 있었겠느냐"고 말해 이런 의심을 뒷받침했다.

검찰은 산은이 위아㈜의 부실채권을 공매하는 과정에 8개 업체가 응찰했지만 결국 3개 업체는 산은이 지명했고 5개 업체는 김동훈씨가 데려온 업체인 점에 비춰 채권 가격 역시 담합이나 사전유출에 의해 사전에 결정돼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채 기획관은 "산업은행 실무자 조사는 이미 끝났으며 이들에 대한 조사가 끝났기 때문에 박상배 전 부총재의 구속영장 청구가 가능했다"고 말해 산업은행의 편법 부채탕감에 대한 범죄 단서를 상당량 확보했음을 내비쳤다.

◇ 산은 고위층·캠코로 수사 확대 = 검찰은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서 채권 공매는 본부장 전결 사항이라는 변호인측 주장에 대해 "법규상 전결이 본부장까지라고 할지라도 총재선까지 보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산업은행은 할 말이 없는 사건"이라고 말했던 검찰이 산업은행 '총재선'을 언급한 점에 비춰 박상배 전 부총재가 근무할 당시 총재였던 정건용 J&A FAS 회장에게도 모종의 의심을 두고 있음을 추정케 하는 발언이다.

정 회장은 최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당시 총재에까지 올라오는 사안이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위아나 아주금속이 무슨 회사인지도 모르고 그런 업체명이 생각나지도 않는다"며 로비 관련성을 부인해 수사를 통해 결론이 내려질 전망이다.

이와 함께 검찰은 박 전 부총재의 영장실질심사에서 "캠코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고 있고 관련자를 충분히 수사해야 한다"고 말해 수사를 캠코와 금융 감독당국 고위층으로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음을 시사했다.

위아㈜와 아주금속공업㈜의 부실채권이 일단 캠코에 넘어갔다가 ABS(자산담보부증권)까지 발행돼 이미 유동화가 이뤄졌는데 굳이 산은에 되돌려준 이유도 석연찮고 풋백옵션(put back option)도 산은이 먼저 요청해 이뤄진 게 이상하다는 것이다.

검찰은 현대차의 '위아 부채탕감 보고서'에 나와있는 당시 금융감독 당국 고위 인사도 김동훈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정황이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 계좌추적을 벌이고 있으며 조만간 관련자를 소환해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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