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순환의 고리 속에서는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지역 예술인들은 대중적(massive) 예술을 지향하자니 예술에 대한 소양과 경제적 능력을 갖춘 대중의 수가 지나치게 적고 소수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예술을 추구하자니 수입의 정규성과 정기성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야말로 지역 예술인들의 삶은 악순환적 고리에 빠져 있는 셈이다.
사실 지역 예술인들이 기댈 수 있는 현실적인 터전은 아무것도 없다. 이들을 지원하는 사회제도적 프로그램이 전무한 것은 물론이고 기업의 사회책임 활동 대상으로부터도 비켜나 있다. 아울러 자신이 생산한 예술품으로부터 생겨나는 저작권 또한 시장수요가 없는 상황에서는 현실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가끔씩 팔려나가는 작품 값으로 생활을 이어나가는 이들에게 예술 활동을 촉진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면 본인의 의지와 자긍심뿐이다.
원래부터 주어진 조건이 영속화되는 사회는 문명화된 사회라고 보기 어렵다. 가난한 조건 속에서 태어난 사람이 개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환경을 개선할 수 없는 사회라면 개개인들에게 발전을 위한 동기부여가 불가능한 것처럼 자신의 예술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고 능력을 인정받는 예술인들이 지속적으로 하층적 사회계층으로 남아있는 사회에서는 예술과 문화가 구성원들의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아울러 시장의 안목에만 의존하는 선별적 지원도 문제가 있다. 제도나 정책 담당자들은 시장의 수요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내에서 가치 있는 예술형식과 내용을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중앙과 대세에서 벗어나 있지만 보호받을 가치가 있고 방치될 경우 사회적으로 열등한 위치로 전락해 버리는 소수인들을 차별적으로 지원하는 사회야말로 앞선 사회이다.
대구시는 '컬러풀(colorful)'한 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 '컬러풀하다' 할 때 무엇이 '컬러풀하다'는 것인지 그 대상이 분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도대체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결국 '컬러풀하다'는 것은 현재까지도 텅 비어 있는 외연(外延)인데 정책과 제도를 통하여 그 내연(內延)을 채워가야 하는 상황이다.
과연 그렇다면 대구의 무엇을 내세우고 주장하는 것이 '컬러풀 대구'라는 슬로건의 내연을 만들어 가는데 가장 적합할까. 다름 아니라 예술이다. 예술 중에서도 미술이다. 근대미술의 본류가 되었으며 지금도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많은 화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대구는 그야말로 미술을 통해 컬러풀해질 수 있지 않을까. 도시 전체를 공공미술관으로 가꾸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풍부한 예술 인력들을 동참시켜보자. '컬러풀 대구'를 꿈꾸며….
오창우 계명대학교 미디어영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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