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외교관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을 따라 처음 외국에 나가 살게 되었는데 자녀를 현지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데리고 나서던 날 아침, 이 부인은 낯선 땅 낯선 외국 아이들 틈서리에서 자식이 기가 죽을까봐 신신당부를 했답니다.
"애야, 절대 기죽지마라. 동해물과 백두산의 나라, 태권도의 나라, 월드컵의 나라, '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자답게 행동해야 해. 너는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네 이름을 부르면 씩씩하게 예- 하고 큰 소리로 대답해야 한다. 알겠지? 처음부터 기를 세워야 외국 아이들이 깔보지 않지……."
그런데 그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얼굴을 붉히고 씨익씨익 숨을 몰아쉬며 불평을 늘어놓더랍니다.
"어머니는, 어머니 말씀대로 했다가 창피만 당했잖아요. 출석을 체크하는 시간에 선생님이 영어로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엄마 얼굴이 떠올라 '예-'하고 큰소리로 대답했더니…, 아, 글쎄 선생님도 아이들도 깜짝 놀라 '너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니?'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잖아요. 부끄러워 죽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우리들의 일상적 대화는 대체로 그 소리가 지나치게 큰 것이 사실이지요. 오랜만에 친구라도 만나면 옆에 누가 있건 없건 싸우는 듯한 목소리로 반가움을 주고받고, KTX 안에서 신형 휴대전화로 지극히 사적인 내용의 통화로 같은 칸에 탄 사람들의 단잠을 마구 깨워대고, 손님이 많은 대중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에도 도대체 너무 시끄러워 숟가락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고, 길거리의 자동차 접촉 사고 현장에서는 목소리의 크기 때문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바뀔 수도 있는 사회, 이처럼 목소리가 큰 사람이 상황을 주도하는 사회는 결코 합리적인 사회라 할 수 없겠지요.
초등학교 국어과 교육과정의 지도 내용으로 '알맞은 크기의 목소리로 말하기'가 있습니다. 알맞은 크기의 목소리란 말을 듣는 사람에게 또렷이 들리는 정도의 목소리입니다. 따라서 대화를 나누는 공간의 크기, 말을 듣는 사람의 수효, 말하기의 목적에 따라 목소리의 크기를 알맞게 조절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도 국어교육이 담당해야 할 중요한 몫입니다.
어느 개인이나 사회를 막론하고 말소리의 크기는 그 개인이나 사회의 문화적 수준과 반비례한다지요.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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