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남매는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곤 기가 막혔다. 누나 장애자(67) 씨는 관절염이 심해 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남동생 장원(52) 씨는 수척한 몰골에 작은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고 있었던 것. 한참만에야 누나를 알아본 장원 씨는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남매의 고향은 전남 신안군의 작은 섬 자은도. 몸이 약해 늘 잔병치레를 하던 애자 씨로 인해 집안 살림은 바닥을 드러냈다. 늦둥이로 태어난 장원 씨 역시 건강하지 못했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날이 계속됐다.
가난에서 벗어나려 고향을 떠나 대구로 흘러들어온 것이 이미 50여 년 전. 부모는 나무장작을 팔았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학교생활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애자 씨는 학교 문턱조차 밟지 못했고 장원 씨 역시 초등학교를 다닌 것이 배움의 전부.
1982년 부모가 세상을 뜨자 남매는 생계수단을 찾아 헤어졌다. 이후 다시 만날 때까지 20여 년이나 걸릴 것이라곤 짐작하지 못한 채. 하지만 이들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배우지 못한데다 건강하지 못한 몸이라 인생여정 역시 고달팠다.
애자 씨는 동생과 헤어진 뒤 식당일, 막일 등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서울, 부산을 가리지 않고 쫓아다녔지만 그를 써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원체 몸이 약해서였지요. 밥만 먹여주면 일하겠다고 해도 쉽사리 받아주질 않았습니다. 한 곳에 오래 있지도 못했어요. 툭하면 앓아눕곤 했으니 누가 절 쓰려했겠습니까."
고생 끝에 한 남자를 만나 형편이 펴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뿐. 폐암 선고를 받고 한 쪽 폐를 떼어 내게 됐다.
게다가 수술 직후 남편이 세상을 떠났고 그가 남긴 약간의 재산은 사기를 당해 고스란히 날려버렸다. 다시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일상이 시작됐다.
장원 씨도 삶이 고단했기는 마찬가지. 누나와 헤어질 무렵부터 앓던 골수염이 점점 심해졌다. 고통 탓에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어졌다. 사람들은 몸에서 고름덩어리가 흘러나오는 그를 외면했다. 누나와는 연락이 끊긴 상황. 길거리를 떠돌 수밖에 없었다.
"10여 년 간 노숙자로 지냈습니다. 다리 밑에 가마니를 깔고 지냈지요. 요즘과 달리 당시만 해도 밥을 나눠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구걸로 연명했지요."
폐결핵이 찾아왔다. 오랜 바깥생활에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 탓.
하지만 이대로 삶을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내수공업자인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일을 거들어주고 모은 돈으로 수차례 수술을 받았다. 말소된 주민등록도 다시 했고 단칸방을 얻었다.
남매는 지난 2003년 다시 만났다. 장원 씨가 동사무소에 들렀다가 주민등록 자료에서 우연히 누나의 행적을 확인, 연락이 닿은 것. 먼저 장원 씨를 알아본 애자 씨는 동생을 불렀다. 두 사람은 반가워서 울고, 서로의 처지가 안타까워 또 울었다.
현재 이들 남매가 방 두 칸을 얻어 세든 곳은 50년은 족히 됐음직한 한옥(수성구 수성4가). 20여 층에 달하는 아파트들과 깔끔한 연립주택 틈에 끼인 모습은 남매의 처지마냥 처량해 보인다. 남매의 수입은 정부로부터 받는 50여만 원이 전부. 방세(16만 원), 치료비를 내고 나면 끼니 걱정을 해야 한다.
"예전엔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목숨은 이리도 질길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젠 남동생과 함께 있을 수 있으니 마음만은 편안합니다. 몸을 움직일 여력이 생기면 무슨 일이라도 해서 동생을 챙길 겁니다." 동생을 바라보는 애자 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저희 '이웃사랑' 제작팀 계좌번호는 대구은행 069-05-024143-008 (주)매일신문입니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
'어대명' 굳힐까, 발목 잡힐까…5월 1일 이재명 '운명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