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늘어뜨린 빈 화첩이 바닥에 3권, 탁자 위에 2권. 이미 가득 차버린 화첩도 몇 권 보인다. 24일 오후 3시 대구 중구 봉산동 예송갤러리가 독특한 행사를 찾아 몰려든 손님들로 가득했다.
시인은 시를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서예가는 이에 걸맞은 화제(畵題)와 이 날의 내력을 위에 풀어내는 '화첩 퍼포먼스'(본지 23일자 보도)가 벌어지는 자리였다.
일찌감치 도착한 박진형 씨가 작은 붓을 잡고 시를 풀어나가자 화가인 권기철 씨와 이영철 씨가 화첩 위로 그림을 잡아나갔다. 박기섭 시인이 도착하고 화가 이규목 씨도 가담하면서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나갔다. 연필에 매직펜 오일 스틱, 먹 등 준비된 도구를 가지고 9명의 시서화가들은 비어있던 화첩에 형형색색 옷을 입혔다. 음악을 들으며 음식과 술을 맛보며 이들은 풍류를 즐겨나갔다.
구경 온 친구들이며 관람객들도 음료수 한 잔을 나누며 이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유심히 지켜봤다. 서화가 이홍재 씨가 새겨온 낙관을 찍고 늦게 도착한 박철호 씨가 판화를 찍자 화첩은 금세 그 공간을 가득 채웠다.
박진형 씨는 "우리끼리만 놀다가 공개적으로 하니 솔직히 부끄럽다."고 했다. "시인들은 잘 놀 줄 모르는데 괜히 하자고 했다가 욕만 먹었다. 다시는 안 하겠다."고 엄살을 피웠다.
평소 경북 고령군 박곡리 이규목 씨 화실에서 밤새 화첩을 만들었던 이들의 공개 퍼포먼스에 관람객들은 호응했다. 미술을 배우고 있다는 장세록(46·여) 씨는 "자유롭게 즉흥적으로 생각나는 대로 옮겨나가는 모습이 멋있다."고 했다. 다른 관람객들도 "시와 예술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대중에게도 쉽게 다가설 것"이라고 호평했다.
장장 3시간 30분에 걸쳐 열린 이날의 화첩 퍼포먼스는 이홍재 씨가 동료의 의견을 받아 제목(五月 속으로)을 써넣으면서 끝을 맺었다. 새롭게 만들어진 화첩 10권은 31일까지 예송갤러리(053-426-1515)에서 전시된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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