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
박이화
호박잎처럼 크고 넓은 기다림 위로
투다다닥 빗방울 건너 뛰어오듯
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불볕 아래 시든 잎처럼
그 아래 지친 그늘처럼
맥없이 손목 떨구고 늘어지던
내 그리움의 촉수들이
마침내 하나 둘 앞 다투어 눈떠
사방 꽃무늬 벽지처럼
내 마음 안팎을
온통 분간 없이 휘감아 뻗고,
예고 없이 들이친 소낙비의 행렬에
또 한바탕 허둥대며 젖는 잎,
잎들 전선이 젖고 그 선을 타고 오는
그의 목소리
열대어처럼 미끈한 물비늘로 젖어와
어느 새 내 몸은 출렁출렁 심해로 열리고
여름은 그리움도 지친다. 간절한 그리움은 '호박잎처럼 크고 넓'다. 그 '크고 넓'은 그리움이 '불볕 아래 시든 잎처럼' 지칠 무렵, 갑자기 '그에게 전화가' 오면 앞 다투어 눈을 뜬 '그리움의 촉수들'은 그리운 이를 향해 '온통 분간 없이 휘감아 뻗'는다. 그것은 시든 호박잎에 '예고 없이 들이친 소낙비의 행렬'과 같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가 온몸에 '열대어처럼 미끈한 물비늘로 젖어'오는 것이다. 그렇게 그리움에 젖은 '내 몸은 출렁출렁 심해로' 열린다.
누구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다른 세계를 하염없이 꿈꾼다는 것이리라.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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