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빚더미 서민 살리자!"…시민단체 나섰다

지난달 29일 오후 대구 중구 동인4가 한 사무실. 김성운(33·가명·대구 남구) 씨가 심각한 표정으로 설문지를 써내려 가고 있었다. 그가 찾은 이 곳은 대구지역 시민단체인 '인권운동연대'가 매주 토요일마다 여는 '금융피해자 파산학교'.

부채규모와 이유, 월 평균 소득 등 30여 개 남짓한 빈 괄호를 채워 넣은 뒤에야 김 씨는 한숨을 쉬며 펜을 내려 놓았다. 은행대출과 카드빚 등 부채가 2억 원에 이른다는 김 씨는 "개인파산 신청을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하는지 몰라 마냥 손을 놓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겨우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고 밝게 말했다.

빚더미에 올라서는 서민들이 많아지고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 불량자)가 급증하자 이들을 돕기 위한 시민단체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 해 8월부터 마련된 '금융피해자 파산학교'에는 매주 20~30명의 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파산 및 개인회생 신청방법, 법 절차 등에 대해 도움을 주는 이 학교에는 벌써 750여 명의 '수강생'들이 거쳐갔다.

이들 중 120명이 파산절차를 밟았고 30명이 면책선고를 받았으며 80명 가량이 파산 신청 서류를 준비하고 있다. 인권시민연대 관계자는 "파산학교를 찾는 이들이 지난해 보다 30%가량 늘었다."며 "이는 도시 서민들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파산학교의 도움으로 지난달 3일 채무 면책 판결을 받았다는 김연남(64) 씨는 "개인 파산신청을 대행해 주는 법무사도 많지만 150만 원이 넘는 대행 수수료가 부담스러워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또 "빚의 굴레를 벗어날 길이 있음에도 복잡한 법 절차를 설명해 주는 곳이 없어 꼼짝없이 당하고만 있는 서민들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파산학교를 찾은 서민들은 정부가 신용회복을 위해 운용하는 개인 워크아웃과 개인회생제도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개인회생제도의 경우, 빚을 다 갚더라도 금융기관대출 등 경제활동에 큰 제약이 있다는 것. 특히 개인 워크아웃은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8년간 빚을 나눠 갚아야 하나 이들 중 20% 이상이 빚을 못 갚아 1~2년 만에 탈락한 뒤 결국 파산 절차를 밟는다는 얘기였다.

이진영(38·가명) 씨도 그렇게 파산했다. 지난 2004년 3천500만 원의 빚을 내고 식육점을 연 이 씨는 1년 6개월 만에 인근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시설 투자비조차 건지지 못하고 동네 밖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결국 3천만 원의 빚을 갚으려 개인 워크아웃을 신청했지만 건설 일용직을 전전하며 두 아이를 키우며 매달 50만 원의 빚을 갚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이 씨는 지난 3월 파산 선고를 받고 채무 면책을 기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서민들의 빚더미 구조해결에 정부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단순히 기초생활수급 대상을 늘리는 정도의 소극적인 정책 대신, 대부업 고금리 제한 등 채무해결을 위한 정책적 지원과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폭발적인 증가와 자영업자의 몰락 등 빚을 유발하는 원인에 대한 진단이 우선"이라며, "낮은 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인권운동연대 053)290-7474.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개인워크아웃=개인이 법원에 파산신청을 내기 전에 채무를 일부 탕감해 주거나 만기를 연장해 개인에게 신용회복의 기회를 주는 제도.

▷개인회생제도=법원이 강제로 채무를 재조정해 파산을 구제하는 일종의 개인 법정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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