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성로의 밤, 듀엣 초상화가의 청춘스케치

지난 1일 오후 10시 대구시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 늦은 시간임에도 도심광장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그 한가운데 자리 잡고 앉은 윤선우(40) 씨와 소 정(39) 씨, 둘은 초상화가다.

주변엔 원 빈, 전지현, 김희선 등 유명 배우들의 홍보용 초상화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윤 씨는 벌써 한 여인의 초상을 거의 다 그렸고 소 씨는 젊은 커플을 스케치하는 중이다.

얼굴윤곽이 서서히 드러나자 거리의 구경꾼들이 감탄사를 토해낸다. "와! 정말 똑같네.", "너무 예쁘게 그려준다."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지만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두 화가.

윤 씨가 그림을 완성하자 손님 김인희(36·여·경남 마산시 창동) 씨가 만족한 표정으로 '90점 이상'이라고 환하게 웃는다. 윤 씨는 "그림은 사진에서 못 느끼는 내면의 느낌을 살려주고 상호 교감을 통해 완성되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했다.

30분쯤 지나 소 씨의 그림이 또 연인을 즐겁게 해줬다. 2년째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신창호(25·회사원)·조미경(21·대학생) 커플은 "처음 시도해보는 초상화인데 좋은 추억이 됐다."고 좋아했다.

섬세한 터치와 사실적인 묘사가 그림의 특징인 소 씨는 "매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100% 만족하는 그림은 없지만 여성은 예쁘게, 남성은 멋있게 그리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대구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둘은 이미 전국에서 알아주는 길거리 초상화가 100명(대구 15명 정도)에 속할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그만큼 경력도 쌓였다. 거의 10년 이상 축제현장과 거리 등을 돌아다니며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지금까지 그린 초상화만 4천∼5천 장. 매년 400∼500명의 얼굴을 그려주는 셈이다.

전국 유명축제 때는 거리화가로 축제 분위기를 띄워주고 평소에는 작품활동이 끝나는 밤에 동성로에서 초상화를 그려준다.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해질 무렵인 오후 9시쯤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그리려는 손님이 많아 오전 2시까지 앉아있을 때도 있다.

가격은 한 사람당 2만 원. 현장에서 액자까지 맞추면 1만∼1만5천 원이 추가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사람당 30~40분씩 공을 들여 그리는 것을 보고는 비싸다고 느끼지는 않는다고 했다. 처음엔 부업 삼아 시작했지만 이젠 제법 쏠쏠한 밥벌이 및 작품활동비가 되고 있다.

보람과 추억은 덤.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거리를 만들어줬다."며 팁을 주기도 하고 "좋지 않은 인상인 줄 알았는데 초상화를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며 꾸벅 절을 하는 손님도 있다.

하지만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힘들 때도 많았다. "순수 예술가가 값싼 돈벌이나 하느냐?", "전국을 돌아다니는 장돌뱅이냐?"는 등 비아냥거리는 얘기를 들을 땐 속이 탄다. 때론 만취된 부랑자들이 행패를 부리기도 해 화가 나기도한다. 힘든 건 잠시. 그 어떤 비난도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의 초상화가를 꿈꾸는 열정을 막을 순 없다. 윤 씨는 "시민들과 함께하는 예술문화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거리의 초상화가들도 친근한 생활예술인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소 씨도 "돈을 벌지 못하면 더 나은 예술활동을 하지 못한다."며 "대구에도 월드컵 경기장, 봉산문화거리 등에 거리 화가들이 넘쳤으면 좋겠다."고 맞장구쳤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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