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일기)무두일(無頭日)과 교장의 책임

무두일(無頭日). 요즘도 이런 말을 쓰는지 모르겠다. 80년대 교무실에서 교장, 교감이 모두 자리를 비운 날을 일컫던 은어(隱語)다.

이런 날 교무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진다. 특별실마다 그야말로 특별한 일들이 벌어진다. 삼삼오오 모여 교장, 교감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평불만을 토로한다. 구석방 한 켠에 숨겨 두었던 바둑판도 휴게실쯤까지 진출한다.

그 때 우리 교사들은 교장, 교감 선생님들의 직무 수행을 감시, 감독, 억압 등의 이미지로 느꼈던 모양이다. 그래서 무두일을 맞아 맘껏 해방감을 맛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교무실 분위기는 세상의 변화와 맞물려 크게 바뀌었다. 교장, 교감 선생님의 눈치를 보거나 부담스런 마음을 가지는 교사들이 많이 줄었다. 교장, 교감은 직무상 상사의 지위마저도 위협받는 처지라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교육 민주화가 이루어진 면은 좋다. 그런데 '책임'과 조직의 내적 질서에 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부분도 있을 듯싶다.

교육 행정 기관에 근무하는 나는 요즘 상급 결재자들이 모두 자리를 비운 날이 싫다. 나의 판단에 대해 전적으로 내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책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실감하며 사는 셈이다.

학교 사회는 교사 개인이 직접 책임질 일이 많지 않다. 각자 맡은 수업을 충실히 하고, 담당하고 있는 학생들의 교과, 생활 지도에 노력하면 된다. 이를 포함한 대부분의 교육 활동에 관한 책임은 교장이 지고 있다.

현행 법규에 따르면 교장은 '교무를 통할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하도록 되어 있다. '통할, 지도·감독, 교육'이란 단어의 범위는 거의 무한대까지 확장된다.

그래서인지 교사들은 교장이 지는 책임의 무게를 잘 알지 못한다. 직위의 권위인 결재권마저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사도 있다. '결재권'이란 교육 활동과 관련된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권한을 침해하면서 책임만 지우는 일은 가혹하다. 또, 책임만 지워 두고 권한을 인정하지 않으면 내적 질서가 무너져 성공한 조직을 만들 수 없다.

어느 시대, 어떤 사회든 내적 질서가 무너진 조직은 실패했다. 내적 질서가 튼실하게 유지될 수 있는 책임과 권한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자.

박정곤(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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