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일어나면 조국을 위해 싸우겠다는 십대들이 일본과 중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다는 설문조사가 나왔다. 가짜 명품 시계 사건도 있었다. 20대의 허영과 사치, 도를 넘은 명품 소비 추세에 관한 보고서도 나왔다. 이 모든 문제들은 서로 이질적인 것 같지만 뿌리는 같다고 할 수 있다. 내면의 아름다움보다는 겉치레, 실력보다는 간판, 남과의 비교를 통한 상대적인 우월감과 행복감의 확인, 고통이 수반되는 명분이나 가치보다는 일시적인 쾌락과 안락의 추구,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내 가족만 무사하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극단적인 가족이기주의 등이 그 모든 것들을 자라나게 하는 공통의 토양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목격되는 진실성과 치열함의 결여는 당면한 안보나 경제 관련 현안보다 국가 장래를 위해 훨씬 더 중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테베를 휩쓸고 있는 역병은 선왕 라이오스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자를 벌해야 없어진다는 신탁에 따라 살해자 수사가 진행된다.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는 사건의 전모를 짐작하고 오이디푸스가 더 이상 비밀을 캐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파멸을 뻔히 알면서도 이오카스테의 만류를 뿌리치고 출생의 비밀과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한 자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찔러 멀게 한 후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방랑의 길을 떠난다. 인간 고뇌의 극한을 묘사하며 비극적 아름다움을 완성시킨 소포클레스의 대표작 '오이디푸스 왕'의 줄거리이다.
이 작품이 희랍 비극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고전으로 간주되는 이유는 치밀한 구성과 원숙한 기법 때문이 아니다.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처참한 파멸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오이디푸스의 확고한 의지 때문이다. 그는 파멸이 분명하게 예견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적당한 타협을 거부하고 모든 것을 밝힘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비극적 주인공이 되었다. 이와 같은 인물의 창조가 이 작품을 불후의 고전으로 만든 것이다.
얄궂은 비극적 운명에 결연히 맞서는 오이디푸스의 고귀한 용기와 치열함을 읽으며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진정성의 위기와 적당주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는 어떤 것을 진지하게 끝까지 추구하지 않는다. 조금 진행하다 여의치 않으면 아무 생각 없이 포기해 버린다. 그러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현명한 처세술로 간주되기도 한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총체적인 진실성의 위기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은 '읽고, 생각하며, 기록하기의 생활화'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독서와 사색보다 사람을 더 진실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윤일현(교육평론가, 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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