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색의 가을'…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잇따라 개봉

극장가가 추석 시장 대격돌에 들어가기 전,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잔잔한 호흡으로 현실을 응시하는 작품들이 스크린을 찾아온 것.

1994년 100일 동안 1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르완다 내전을 다룬 '호텔 르완다', 9·11 테러를 주제로 한 '플라이트 93'이 7일 개봉되고 '세계무역센터'가 10월 말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영화 중에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재현하는 영화 '가을로'가 역시 10월 말 개봉 예정이다. 다큐멘터리도 두 편 개봉된다. 실제 무당의 삶을 따라간 '사이에서',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강연을 카메라에 담은 '불편한 진실'이 그것. 영화 제목처럼 진실은 대체로 불편함을 수반하기 마련이지만 올가을, 진지한 사색을 도와줄 영화들이다.

◆ 호텔 르완다

1994년 자신이 일하는 호텔에 1천268명 이상의 난민을 피신시켜 대량학살로부터 구해낸 실존인물 폴 루세사바지나의 실화를 그린 영화. 아프리카의 '쉰들러 리스트'라 할 수 있다.

영화의 배경은 벨기에 식민정책이 남긴 상처로 다수족인 후투족과 소수족인 투치족이 끊임없이 갈등에 시달리는 르완다. 후투족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내전이 발발한다.

최고급 호텔 지배인 폴은 평범한 가장이 그렇듯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책임감 있는 가장이다. 어수선한 국내 상황 때문에 언젠가 도움을 받기 위해 외신 기자들과 외교관들에게 유독 정성을 쏟는다. 그러던 중 내전이 발발하고 투치족인 아내 역시 위험에 처한다. 막상 내전이 발발하자 외신들은 방관자일 뿐 르완다의 상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가족의 안전만을 신경쓰던 소시민 폴은 어느 날 식료품을 구하러 자동차를 몰고 가던 중 차가 덜컹거리는 것을 느끼고 차에서 내린다. 그의 발 밑에 널린 것은 수백 구의 시체들. 그 충격으로 그는 인간의 존엄성을 찾기 위한 휴머니스트가 되어간다.

벨기에 호텔이라는 점 때문에 폴이 근무하는 호텔이 안전지대로 분류되자 투치족 난민들이 몰려들고 폴은 이들을 살리기 위해 목숨 건 협상을 한다. 주인공을 맡은 돈 치들의 열연으로 호평을 받았다. 12세 관람가. 7일 개봉.

◆ 플라이트 93

미국의 자존심에 커다란 구멍을 낸 2001년 9·11 테러사건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내용이어서인지 5년이 지나서야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영화 '플라이트 93'은 9·11당시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 미 국회의사당 폭파를 시도하기 위해 피랍됐던 4대의 비행기 가운데 유일하게 실패했던, 그래서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유나이티드 93편'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나이티드 93편'은 워싱턴 충돌을 목표로 하는 테러범들에 의해 납치됐지만 승객들의 영웅적인 저항 끝에 펜실베이니아주 벌판에 추락,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영화는 여객기의 비극적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비행기의 궤적을 쫓아가며 그날 숨막히게 돌아갔던 각 지역의 항공, 군 관제국의 모습을 교차시켜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그려낸다. 사고 직전 희생자들과 전화통화한 유가족들의 증언, 블랙박스 자료 등을 토대로 제작됐으며 사태를 파악하지 못해 허둥거리는 펜타곤과 백악관의 무능함도 담겨 있다. 15세 관람가. 7일 개봉.

◆ 불편한 진실

2000년 미국 대선 당시 조지 부시 현 미국 대통령과 박빙의 승부를 겨루다가 깨끗이 결과에 승복한 앨 고어. 그후 그는 환경운동가로 변신했다. 그는 지구 온난화가 불러온 심각한 환경위기를 고발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다니며 1천 회 이상 강연을 진행했다.

다큐멘터리는 지구 온난화에 관한 앨 고어의 강연자료를 앞세워 우리가 처한 현실을 일깨우려 한다. 지난 50년간 급속도로 상승하고 있는 지구 온도로 인해 규칙적인 리듬을 보여왔던 기후와 생태계는 파괴되어간다. 그러나 경제논리에 의해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은 외면당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환경운동가 로리 데이비드와 영화 제작자 로렌스 벤더는 앨 고어의 지구온난화에 관한 슬라이드 강연을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줘야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영화화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앨 고어의 개인사가 더해지면서 다큐멘터리는 인간적인 색깔을 입는다. 대선 경합에서 실패했던 일,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을 뻔했던 일, 누나가 폐암으로 숨지면서 그 충격으로 아버지가 담뱃잎 농사를 그만둔 일 등을 통해 그가 정치 대신 환경운동가의 길을 택하게 됐던 배경을 내레이션으로 전달한다. 전체 관람가. 14일 개봉.

◆ 사이에서

무당의 삶을 편견없이 그려낸 다큐멘터리. 무당 이해경에게 스물여덟 살의 인희가 찾아온다. 요즘 들어 자꾸 몸이 아프고 집안에도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그녀에게 해경은 '맑고 순수한 영이 들었다.'고 말해준다.

해경은 신이 내렸다는 것을 거부하는 인희를 측은하게 여겨 자신의 일상을 보여준다.

30년간 암을 비롯한 갖은 무병을 앓고 쉰이 되어서야 신내림을 받게 되면서 고통에서 벗어난 손영희, 원인도 없이 왼쪽 눈을 실명한 후 신이 보인다는 8세 동빈이,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은 아들을 달래기 위한 굿을 하는 가족들을 만나게 되면서 인희는 차츰 마음을 열어간다. 전통 무속을 다루고 있지만 자신들의 운명을 버텨내는 무속인들의 삶과 굿을 통한 카타르시스에 보다 밀착한 다큐멘터리물이다. 15세 관람가. 7일 개봉.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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