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골목길을 걸으며

한 쌍의 젊은 남녀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어 온다. 슬그머니 자리를 양보하고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금새 '하하' '호호' 건강한 웃음소리가 골목길을 메우고 있었다. 늦은 오후 자동차가 쉴 새 없이 질주하고 양 옆으론 거대한 매스의 회색건물들이 내려보고 있는 대로를 가로질러 골목길에 접어 들었다. 차분히 가라앉은 골목길 어귀에 벤치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생활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총체적 공간이다. 우리는 이러한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또한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오고 있다.

작년 봄에 유럽순방을 다녀온 대통령은 '유럽은 작은 도시 주민도 잘 살고, 도시마다 특성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말을 하였고, 도시를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도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목적을 두고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라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이는 과거의 단편적인 개발위주의 정책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하겠다.

현재 우리의 도시계획은 관과 전문가의 주도하에 작성한 장기적 계획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지역주민의 참여와 권한행사가 제한되어 있다. 더구나 지자체는 대규모 개발사업에만 치중하여 직접적 피부에 와 닿는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사업은 소홀히 다루고 있다. 주민들 역시 자신의 집안이나 개인공간에 집착하여 함께 공유하는 공동의 공간 - 골목길, 광장, 놀이터, 공원 등 - 에는 무관심하여 결과적으로 이웃과 단절되고 주거공동체가 약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살고 싶은 도시에 대한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하여 왔다. 과거 먹고 살기 바빴던 시대에는 도시생활의 기본적 시설의 설치를 요구하였고, 그 기본적 시설들이 편리함을 제공하면서 이제는 쾌적한 도시환경과 아름다운 경관, 다양한 문화시설을 요구하게 된다.

대구에서도 1996년 처음 시작된 '담장 허물기' 운동은 기존 좁은 골목의 답답함을 해소하면서 쌈지공원이 생기고 주차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생기고 있다. 광주시 북구는 구청 내에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팀을 구성하여 마을 만들기 조례를 제정하여 주민과 함께 하는 삶터 가꾸기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도시계획 수립과정에서 자료의 외부유출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해당업무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계획내용의 사전유출에 따르는 민형사상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어, 개인적 희생을 감수할 각오가 없지 않고는 주민과 함께 도시계획을 수립할 수 없다. 마을 만들기 조례를 제정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지자체 임의로 조례를 만들어 운영할 수 밖에 없다. 사회는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반해 우리의 제도와 행정은 항상 뒤 처져 있다. 왜? 언제까지?

김경호 아삶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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