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익 전 대구시장의 이름이 최근 언론에 다시 등장한 건 뜻밖이었다. 대선 후보의 한 사람으로 거론되고 있는 고건 전 총리의 정치행보와 직결된 '희망한국 국민연대'의 발기인명단 맨 앞줄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했다. 지난 17대 총선 불출마로 정치권을 떠난 그가 아직도 정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일까?
그의 사무실은 서울 퇴계로 한 켠에 위치한 오래된 상가건물 4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쓰는 사무실 한쪽 벽은 서재였고, 다른 쪽 벽의 장식장에는 그의 30년 공직생활을 증명해주는 각종 명패와 임용장, 공로패 등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내무부 총무과장, 경기도 부지사, 마산시장, 창원시장 등의 명패가 그의 공직 이력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대구광역시장과 대구부시장 명패가 눈에 띄었다. 책상에는 제대로 정리되지않은 원고와 자료들이 보였다. 묻지도 않았는데 어릴 적부터 공직을 그만둘 때까지의 기록을 정리, 회고록이라도 만들려고 자료 정리 중이라고 한다.
이 전 시장이 기억하고 있는 좋은 시절은 서울시 과장(서기관)으로 일하던 1970년대. "그 때가 가장 패기만만했고 잘 나갔던 것 같다. 서울시사(史)에도 오를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이 전 의원'라는 호칭보다 '이 전 시장'으로 불리워지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구시장 시절을 가장 행복해하는 것 같다. 두 번이나 도전했던 민선시장의 꿈을 못다 이뤘지만 말이다. "대구를 위해 좀 더 했으면 했는데…." 하긴 지난 98년에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국회의원직까지 내던지며 선거에 뛰어들 정도로 대구시장에 올인하지 않았던가.
전직 대구시장이었음을 자랑스러워하는 그를 가을 문턱에서 만났다.
대뜸 궁금했던 최근의 정치행보부터 물었다. 정치와는 인연을 끊었던 그가 다시 대선정국에 뛰어든 정황이 궁금했다. 같은 내무관료 출신인 고 전 총리와는 함께 근무했던 사이였다.
고 전 총리가 먼저 전화를 걸어와 도와달라고 부탁했는데 이를 매정하게 거절할 수 없어 망설이자 발기인 명단에 올랐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내년 대선정국에서 고 전 총리의 영향력과 가능성'에 대해 슬쩍 물어본다. 두차례 낙선의 기억을 가진 그로서는 이제 제3자를 통해 자신의 꿈을 대신하고자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그가 적극적으로 특정인 지지에 나서거나 대선캠프에 뛰어들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어쨌든 누가 뭐래도 지금 그는 '자유인'이다. 그가 빠지면 재미가 없다며 독촉하는 각종 모임 때문에 일주일이 바쁘다. 대경회, 목요회, 석교회, 요산요수회 등 10여 개의 모임이 줄을 잇는다. 발이 넓다보니 결혼식 등 경조사도 넘쳐난다. 연초에 아들 한희(35)를 뒤늦게 장가보낸 터라 지인들 혼사에 참석하지 않을 수도 없다. 26일 서울 교육문화회관에 이어 27일에는 삼성동 공항터미널 예식장을 다녀왔다. 예식장에서 친구들과 지인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무실에는 수시로 친구들이 찾아온다. 대부분 관료 출신이지만 같은 기수인 목요회 멤버들도 자주 만난다. 며칠 전 친구들을 만나 삼겹살에 소주를 한 잔 걸치고는 노래방에 가서 마이크 한 번 잡았다고 한다. 하긴 대구시장과 국회의원 시절,그는 잘 나가는 '풍류객'으로 이름을 날렸다. 아무나 그런 명성을 얻지는 않는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경남대와 경기대 등 몇몇 대학에 특강을 나가느라 바쁘다.
여전히 그는 대구에 대한 애증의 끈을 놓지 못했다. 그의 말끝마다 "대구가 바뀌어야 한다." "대구는 너무 심각하다."는 등의 걱정이 붙어나온다.
전직 시장으로서 "역대 대구시장들이 대구를 다 망쳤다."며 자성과 비판을 동시에 해댄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대구의 미래를 위한 계획이 제대로 실현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기본적으로 나를 포함한 역대 대구시장들의 잘못이다." "밀라노프로젝트다 위천공단이다 했지만 무엇하나 대구경제 회생에 도움이 된 것이 없다." 시장선거에서 혈전을 벌인 문희갑 전 시장을 향한 쓴소리 같기도 하지만 그런 앙금은 없다고 했다.
전임 시장들의 실정과 오류의 경험을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김범일 현 시장이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전직 시장들로 '시장자문위원회'를 구성, 상설화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내놓았다. 전직 시장단이 힘을 합친다면 이제라도 대구의 미래를 위한 프로젝트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전직시장뿐 아니라 지역언론, 지역주민이 함께 '이 시점에서 대구가 이대로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깨닫고 대구 회생을 위한 키워드를 만들어내야 한다."
대구를 변화시켜라. 이것이 그의 화두다. "대구가 합리적 보수로서 대한민국의 보루라는 것은 좋지만 '수구적인 대구'는 좋지않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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