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박 재 희
나는 언제나 갇혀 있다
스스로 눈 막고, 귀 막고 살아온 날들이
벽으로 쌓여
나의 집이 되었다
때로 나를 허물어
몸이 커지면
다시 쌓는 집,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된다
안으로만 차오르는 부끄러운 열정,
그대 앞으로 다가갈수록
그대는 더욱 멀어지고
관 속으로 들어가
홀로 더 높은 벽을 만든다
늦가을
낙엽처럼 이 벽, 스르르 허물어지고
빈집이 될 때
그대 앞에 온몸으로 다가서기 위해
오늘은 튼튼한 집을 지어야 한다.
'외로움'은 타자(他者)와의 단절에서 온다. 그러므로 '외로움'에 대한 강한 인식은 달리 말하면 '그대(타자)'와의 교감에 대한 간절함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대 앞으로 다가'간다. 그러나 이기적 욕망을 비우지 못하기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대는 더욱 멀어'진다. 이런 이기적 욕망으로 '스스로 눈 막고, 귀 막고 살아온 날들이/벽으로 쌓여' 그 속에 갇히게 된 것이다. 마침내 그 '벽'을 '집'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안으로만 차오르는 부끄러운 열정'으로 지난 생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모습이 현대인의 초상이다.
이 늦가을에는, '그대 앞에 온몸으로 다가서기 위해' 가득한 '나'를 비워야 하리.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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