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살롱] 박근규 의류협회장

"대구 밀라노프로젝트가 성공하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유통을 생각하지 않은 겁니다. 아무리 좋은 상품을 만들어도 안 팔리고 재고가 쌓이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중소기업협동중앙회 부회장 겸 한국의류협회장인 박근규(59) 회장은 대구 밀라노프로젝트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의류 유통에서만 잔뼈가 굵은 사업가답게 밀라노 프로젝트에 대한 문제점을 다소 색다르게 제기했다. 그는 "판로는 염두에 두지 않고 기술 개발만 하면 뭐 하느냐?"면서 "늦었지만 유통시장을 만들어놓고 생산을 하면 대구 섬유도 미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류판매상의 '수장(首長)'이다. 아시아 최대 의류시장이랄 수 있는 동대문, 남대문 시장 상인들은 물론 의류판매업을 하는 소상공인들의 대표로 있다. 그의 공식직함은 한국의류판매업협동조합 연합회장. 3년 전에는 이들 소상공인을 대표해 중소기업 중앙회 부회장에 진출했다.

그러나 요즘 동대문, 남대문 시장이 예전만 못해 안타까운 점이 한두 가지 아니다. "동대문, 남대문 시장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과거에는 상인이 3만 8천 명이나 됐는데 지금은 3분의 1로 줄었어요. 한때는 시장에 상가 하나만 갖고 있어도 부자라고 했는데 지금은 거의 연명 수준입니다."고 했다.

그는 이 같은 재래시장 의류상가의 퇴조를 정부의 정책실패 탓으로 돌렸다. 일본뿐 아니라 이태리나 프랑스 등 선진국은 대형 유통점을 외곽에 설립하게 하면서 중심상권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무방비 상태에서 유통점을 개방, 마트나 대형점이 도심에 들어왔다. 대형 유통점이 1개 들어오면 재래시장은 7개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요즘 탈출구 마련을 시도하고 있다. 의류 제조·도매업체들이 단체로 개성공단에 진출해 공동브랜드로 승부를 거는 것.

"재래시장 상인들이 공동브랜드를 개발 않으면 앞으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이태리의 유명한 '베네통'도 공동브랜드죠. 이 브랜드로 세계에서 엄청난 돈을 벌어 들였어요."라고 했다.

하지만 값 싼 노동력을 위해 시도하고 있는 개성공단 진출 사업이 최근 북핵 문제로 답보상태인 게 문제다. 최근의 한류 열풍을 감안하면 메이드 인 코리아만 제대로 생산하면 된다. 남북 문제가 제대로 풀려 개성공단 진출만 성사된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특히 우리 의류제조와 도매상인들의 저력을 높이 평가했다. "동대문 패션은 아직도 세계 최고입니다. 이태리에서 좋은 상품이 나오면 이튿날 동대문에 똑같은 제품이 나옵니다. 대신 정부에서 이 같은 저력을 감안해 특단의 지원책을 내놓아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박 회장이 재래시장 의류상을 대표하게 된 배경에는 대구 서문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성주 시골 출신인 박 회장은 군 제대후 곧바로 서문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당시 밑천이 없었던 박 회장이 처음 점포를 열었던 곳은 시장 상가들이 밀집한 곳의 처마 밑. 하지만 박 회장의 사업 수완은 대단했다. "번듯한 다른 점포들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특별한 상술이 필요했어요. 돈이 없어 상품의 구색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에 메리야스면 메리야스, 주름치마면 주름치마 식으로 제품을 한 가지만 사들였죠. 점포를 연 지 1년 만에 서문시장에서 '미도사' 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어요."라고 회상했다.

70년대 초 서울로 올라와서도 사업은 탄탄대로였다. 서울에서 돈이 벌리자 대구 동성로 지하상가에 점포를 열어 서울과 대구에서 동시에 점포를 운영하기도 했다. 15년 전에는 신라레포츠라는 의류 생산 판매업체를 만들었다. 스포츠 의류 '낫소'와 숙녀복 '제누디세', 아동복 '하우디'를 생산 판매한다.

중소기업 중앙회도 일이 많아졌다. 내년 초 중앙회장 선출이 있기 때문. 의류조합에서는 재력과 정치력을 겸비한 그가 회장 선거에 나왔으면 한다. 그는 "경상도 사람들이 너무 많이 나오면 표가 분산돼서 안 된다."며 후보 조율을 시도하고 있다.

이상곤기자 lees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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