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박기섭 作 '하늘에 밑줄이나 긋고'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하늘에 밑줄이나 긋고

박기섭

사람 사는 세상, 살 비린 이 푸줏간에

저마다 몇 근씩의 생육을 찢어 놓고

느긋이 피를 말리는, 오오 눈부신 참형의 시간

그래, 그런 날은 갓 맑은 저 하늘에

성긴 모시올 같은 밑줄이나 긋고 살지

뒤척여 몸서리치는 피멍서껀 삭이면서

이 가을 내 공양은 식은 차 한 잔뿐

해묵은 뉘 안부를 마른 나무에나 묻고

사무쳐 옹근 마음도 이냥 헐고 말겠네

이제 이 지상의 노래는 식어 숯이 되고

끓는 불잉걸로도 어쩌지 못할 오한만이

온 산천 시퍼런 적막을 대지르고 있으니

가을은 '저마다 몇 근씩의 생육을 찢어 놓고/ 느긋이 피를 말리는' 계절이다. 모든 생물이 전신을 말리는 계절이다. 그야말로 '눈부신 참형의 시간'이다. 그래, 이런 계절에 그대는 무엇을 더 가지려 하는가. 모든 것을 털어야 하리. 그 누구에겐가 '사무쳐 옹근 마음도 이냥' 헐어야 하리. 보라, 푸른 나무 아래 젊음의 열정으로 부르던

'지상의 노래는 식어 숯이 되'고 있지 않는가. '끓는 불잉걸로도 어쩌지 못할 오한만이/ 온 산천 시퍼런 적막을

대지르고 있'지 않는가. 그렇게 만물이 저물어 가는 계절이다.

이 가을에 그대여, 또 무엇을 탐하고 있는가. 그대도 속절없이 저물어 가고 있지 않은가.

구석본(시인)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4주 연속 하락해 51.5%를 기록했고,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스타벅스 코리아는 마케팅 논란 재발 방지를 위해 오는 22일 전국 매장에서 영업을 조기 종료하고 교육을 실시한다. 신세계그룹은 17일 역사 ...
6·3 지방선거 당일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비상임위원 7명이 청사에 출입 기록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며 의문...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