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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에세이] 텔레비전과 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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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친구가 새 차를 샀다. 거기에 텔레비전이 달려 있었는데 요즘 같은 DMB(이동 멀티미디어방송)가 아니고 도심의 건물 사이를 지나다 보면 전파가 약해져서 화면이 나왔다 안 나왔다 하는 일반 방송이었다. 친구를 믿고 조수석에 앉아 운명을 운전자에게 맡겨야 하는 나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차의 속도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방송이 나오지 않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었다. 불행한 것은 내 친구가 그것을 개조해서 시속 100킬로미터든 100만 킬로미터든 방송이 나오도록 해놓고야 직성이 풀리는, 배달민족의 사나이라는 점이었다.

운전을 시작한 친구는 신호에 걸릴 때마다 텔레비전으로 눈을 돌렸다. 내가 강력하게 끄라고 종용하자 그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텔레비전을 껐다. 그러고서는 정작 자신은 집에서는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차에서는 그렇게 악착같이 텔레비전을 봐야 하느냐고 하자 심심해서 그러는 거라고 했다. "심심이 심심찮게 사람 잡겠다. 너 하나만 아니고 여럿 잡겠다."고 했더니, 그는 사실 축구중계를 보며 가다가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가 발리슛으로 골을 넣는 순간 발이 앞으로 튀어나가서 사고를 낼 뻔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얼마 전에 집 앞에서 택시를 탔을 때도 운전기사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기사가 내 친구가 아니어서 나는 잔소리를 할 수 없었고 그게 주행속도에 따라 작동이 멈추는 종류인지 아닌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나는 택시 기사에게 5분이면 닿을 지하철역까지 가자고 했다. 원래는 다른 곳, 미국의 민요 작곡가 포스터의 노래 '오 수재너'에 나오는 가사마따나 '앨라바마'처럼 머나먼 곳을 갈 생각이었지만 텔레비전과 기사의 친분관계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던 것이다. 기사는 기사대로 한참을 기다려서 태운 손님이 기본요금 정도만 나올 정도로 가까운 거리라는 게 못마땅했는지 약간 거칠게 운전을 했다. 그러다보니 차 소리가 커졌고 그 때문에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기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볼륨을 확 올렸는데 그 때문에 커진 소리는 내 귀에 천둥처럼 들렸다. 기사는 내가 뒷자리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을 아는지 택시가 주행하는 동안 텔레비전을 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듣기는 해야겠다는 태도였다. 신호에 걸리자 그의 눈은 자연스럽게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견디다 못한 나는 운전기사에게 소리를 좀 줄여달라고 부탁했다. 큰 선심을 쓰듯 소리를 줄인 기사는 신호가 바뀌자마자 총알처럼 달려 나를 지하철역 앞에 내려놓고는, 돌아서서 가는 내가 들으라는 듯 다시 볼륨을 높이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고막이 상하지 않기를 빌었다.

얼마 전 밤에 고속도로로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길이 좀 막히는 듯하자 앞차의 화면이 내비게이션 화면에서 텔레비전으로 바뀌고 조수석에 앉은 사람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듯했다. 운전자의 고개 역시 좌우로 흔들리며 同調(동조), 내지는 共鳴(공명)하기 시작했다. 내 차에 있는 내비게이션은 내 휴대전화와 마찬가지로 구형이어서 텔레비전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옆차로를 보니 그 차에서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앞차의 앞차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내 뒷차도 텔레비전을 보며 운전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행렬을 이룬 차들이 고속도로를 초저속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자동차 보험을 취급하는 보험사의 순익이 차량용 텔레비전이 급증한 이후 줄어들지 않았는지 궁금해졌다. 알아보는 김에 에어백을 장착한 차량에 대해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것처럼 텔레비전이 나오지 않는 구형 내비게이션을 장착한 차량에 대해서도 할인을 해줄 의향이 없는지 묻고 싶어졌다. 그렇게만 된다면 '구형'과 '부작위'에 대해 혜택을 주는, 아주 특별하고 드문 사례가 될 터인데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다고 운전하면서 텔레비전이며 동영상을 봐온 사람들이 차량용 텔레비전을 떼낼까?

성석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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