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비행사들이 좀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지구는 둥글고 푸르다. 어슴푸레한 협곡과 광활한 밀림 사이사이에 꼭꼭 숨어 도저히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곳도 보인다. 하지만 이제 이 땅위에 오지는 없다.
TV나 케이블로 방영되는 '오지를 찾아서'를 봐도 이미 웬만한 오지에는 중국제 공산품과 블루진이 들어가 있고 TV가 보급돼 있다. 방송PD와 카메라맨이 용케도 오지를 찾아내 보여주지만 이미 그곳은 오지가 아님을 그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청바지를 입고 지나가는 사람을 통제하고, 휴대전화를 걸고 있는 사람을 화면 밖으로 쫓아야 하는 상황은 비일비재하다.
화면에 비치는 것은 주로 오지에 사는 '오지스러운' 아버지들이지만 화면 밖의 아들들은 이미 다른 삶의 방식에 눈 떠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나는 마음 한구석이 슬퍼진다. 그 아들들이 비록 지금보다 더 나은 조건 속에서 삶을 살게 될지라도 말이다. 왜 그런 것일까?
대체로 사람은 물질적으로 풍요할수록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지구촌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조사해 봐도 그렇다. 대체로 저개발의 골고루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잘사는 나라 사람들에 비해 '나는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들의 가난은 우리들 '많이 개발된 나라' 사람들 생각이지 그들 스스로는 절대 가난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누리며' 산다. 자연을 섬기고 섭리를 따라가는 그들은 삶을 아버지에게 배웠고 아들에게 가르치며 살고 있다. 오지의 삶이 슬퍼보이는 것은 그들이 이런 '조화로운 삶'을 더 이상 누릴 수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언론에 노출된 오지는 많은 사람들이, 특히 문명에 찌든 돈 많은 사람들이 맨 먼저 가보는 곳이 되었다. 가볼 데 다 가본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돈을 쓰러 찾아가는 땅. 오지가 오지다워야 오지지 이건 오지가 아니다.
소비와 소유, 경쟁과 부의 축적을 숭배하는 자본주의의 삶을 떠나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지식인 '스코트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은 그래서 진정한 '마음의 오지'를 찾아 떠나간 사람으로 기억된다.
'시팅 불'에 나오는 인디언의 정신세계를 동경한다면 이 세상 어디에도 진정한 오지는 없다. 단지 마음의 오지를 넓히며 소통을 단절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늘어만 갈 뿐…. 필자가 볼 때 오지에 부는 변화의 바람은 항상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분다.
남우선 대구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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