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 안팎에서는 지금이라도 남녀공학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내신 성적의 남녀 차이는 물론이고 당초 공학에서 기대했던 가치들이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 남녀공학에 대한 학생·학부모의 불만이 팽배해 있다면 그 이유가 타당한지 점검해보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야심찬 출발, 그러나 평가는 실종
남녀공학 정책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된 시기는 1998년초. 21세기 교육의 밑그림을 그린다며 이른바 '교육개혁'이 맹렬히 추진되던 때다. 당시 교육부는 신설 중·고교는 물론 기존의 남녀 분리 학교도 가급적이면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중·고교 남녀공학 확대방안'을 마련, 전국 시·도 교육청에 보냈다. '초교와 대학교에서는 남녀 학생이 함께 공부하면서 유독 중·고교에서만 분리교육 하는 것은 비교육적'이라는 취지에서 였다. 여기에 '여학교 수가 모자라 여학생의 학급당 인원이 남학생에 비해 많고, 여학생이 장거리 통학을 해야 하는 배정상의 불이익이 초래되고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더해졌다.
강영혜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제도팀 실장은 "교육의 기회균등 측면,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상대 성(性)을 건전한 동료로 받아들이도록 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공학은 확대 시행 몇 년만에 불협화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발단은 성적이었다. 정진곤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공학내)남학생들의 성적이 떨어지니까 강남에서 남녀 내신을 별도로 산출하자는 여론이 강하게 제기됐다."고 기억했다. 이후 공학 남학생이 남학교 학생에 비해 내신에서 손해를 본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면서 공학기피 현상이 심각하게 대두됐고, '성별 학력차'가 존재한다는 대학 연구논문이 속속 발표됐다. 급기야 학교 현장에서 남녀의 '중성화'가 도마에 올랐고, 학교 폭력도 더 많다는 조사까지 나왔다.
한 교사는 "공학 10년이 되도록 가사실은 있는데 기술실은 없거나, 교내 탈의실 설치율이 절반에 그치는 등 공학 준비가 여전히 안 돼 있고, 음악시간에도 남학생은 트럼펫, 여학생은 플룻식으로 오히려 성역할을 고정시키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교육당국은 이런 우려와 지적을 '검증되지 않은 소문'으로 치부해 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95년 교육개혁을 추진했던 '교육개혁위원회'가 김대중 정부때 '새교육공동체위원회', 현 정부의 '교육혁신위원회'로 이름을 바꾸는 동안 공학에 대한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 교육혁신위 정책지원국에 이런 내용을 질의하니 "담당 소관이 아니다. 교육부에 연락해보라."는 답이 왔고, 교육부 내에서는 "공학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다."고 했다. 한국교육개발원, 국회도서관에서도 남녀공학 시행 '그 후'에 관한 교육당국의 연구 자료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4년 전 여고에서 공학으로 전환한 대구 한 사립고교 관계자는 "막연한 동경이었다."며 후회하는 빛이 역력했다. 이 학교는 당시 교사 60여 명이 투표를 한 결과 6대4로 '한 번 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학교 관계자는 "남자 제자를 가르쳐 보고 싶다는 의욕도 있었고 동창회에서도 별 반대가 없었습니다. 사회적인 추세나 교육부 방침이기도 했고요."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우수 남학생들이 공학을 이유로 선 지원을 기피하면서 전반적인 학력저하로 이어졌고 남녀 학생간 내신 성적 차이도 갈수록 벌어졌다. 이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공학이 달갑지 않다."고 씁쓸해했다.
◇불평등 논란, 이제는 평가 있어야
공학내 불평등 논란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문은 성적이다. 공학내 성별 학력차와 관련, 현재 새교육공동체 위원회 상임위원인 정진곤 교수는 "제도상으로 내신 분리 산출이 가능하더라도 그래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정 교수는 "여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니까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아니냐."며 "남학생과 같이 성적을 산출했을 때 10등 할 수 있는 학생이 여학생들끼리 경쟁해서 20등으로 처진다면 이번에는 여학생이 손해를 보는 것"이라고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이경희 서울시 교육청 중등교육정책과 학력평가 담당 장학사는 "일부 수행평가에서 여학생이 앞서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학이 남학생에게 불리하다고 보이지 않는다. 남학교가 내신에 유리하다는 근거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론은 만만치 않다. 김재춘 영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단지 (여학생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한다는 식의) 개인차로 본다면 그런 주장도 가능하겠지만 현재 공학내 성별 학력 차는 이미 집단 차로 봐야 한다."고 했다. 집단간의 격차가 명백하다면 이를 교정하기 위한 정책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누구에게 더 불리한가라는 시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왜 이런 현상이 공통적으로 빚어지는가에 대한 연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며 "공학이든 분리교육이든 다양한 종류의 학교 형태를 보장하고 학교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성숙한 사회의 모습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경식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과정의 문제를 꼬집었다. 그는 "올해 서울대 여자 입학생의 비율이 40%를 넘었다는 것은 지역인재할당제의 역할이 크다. 내신으로 평가하는 이 제도의 특성상 공학에 다니는 상위권 남학생들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다. 현재처럼 학교 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불리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4월 이런 성별 학력차에 대한 연구계획서를 학술진흥재단에 제출한 바 있다. 그는 "OECD국가 연구에서도 여권(女權)의 척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남녀 학력 차가 적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공학을 철폐하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부작용을 바로 잡기 위해 정부 차원의 객관적인 평가 작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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