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클리닉 에세이] 새벽을 여는 사람들

외래에 굵직한 목소리가 울린다. 여느 테너가수에게도 밀리지 않을 음량이다. 진료실에서는 다소간 상기된 얼굴에 반경이 넓은 과장된 몸짓으로 그동안 얼마나 가려웠는지 장황하게 그러나 당당하게 학회에서 강연하듯 내게 발표(?) 하신다. 노인성 소양증으로 수년을 내게 진료 받는 단골인데 근처 재래시장의 떡집 사장님이시다. 당신의 증상을 브리핑한 후에는 자신의 근황과 내가 인생을 살면서 주의 할 점을 낱낱이 일러 주신 후 보무도 당당하게 진료실을 나서는 나의 인생 스승이시다.

이 할아버지의 교훈중 하나가 새벽을 열라는 말씀이다. 나도 소위 말하는 새벽형 인간이며 새벽 예찬론자인지라 서로 코드가 맞다.

사람들도 대부분 잠들어 있고 태양아래 분주한 사념들도 나를 방해 하지 않고 주변의 만물이 고요한 새벽을 나는 정말 즐긴다. 사방이 적막하며 미명이 창가를 기웃거리는 새벽이면 알 수 없는 신비감이 내면의 상태로 인도한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계시면서 우주의 신비로운 조화를 온 몸으로 느낀다. 늘 외부로만 열려 있던 감각 수용기관들이 내부로 쏠리면서 황홀한 어떤 것과의 거룩한 만남을 경험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살면서 나를 괴롭혔던 만남과 헤어짐의 주체할 수 없는 슬픔, 해명할 수 없는 어떤 두려움, 막연하지만 절실하게 맴도는 외로움 따위가 나를 덮어 누를 때

' 새벽에 조용하게 앉으라./ 그 안에 누가 너의 생각을 관찰하는지 찾아보라./ 네 속에 또 하나의 나를 발견하게 되리라./ 그러면 완성이 가까우리라' 라는 묵타난다의 설파처럼 눈감고 삶을 들어 본다.

그러면 ' 고요하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보인다'라는 성철 스님 처럼 눈 감고 고요히 세상을 볼 수 있는 시간도 이 새벽인 것 이다. 그래서 나는 새벽을 사랑한다.

정현주(고운미 피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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