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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다] '내 이름은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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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 터키를 여행한 적이 있다. 추위가 매콤했던 2월 어느날, 배낭 하나 메고 훌쩍 혼자서 떠난 여행이었다. 동양과 서양이 공존한다는 터키는 말 그대로 국토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동양의 얼굴과 서양의 얼굴을 절반씩 가졌다는 이스탄불은 작은 골목길 하나에도 두 가지 세계가 공존하고 있었다.

이스탄불에 머무는 나흘 동안 유명한 관광지를 열심히 찾아다니기도 했지만, 더 많은 시간을 구시가지의 골목을 배회하면서 보냈다. 세월의 더께가 두툼하게 눌어붙은 골목길에는 그 옛날 가장 화려하게 번창하던 무슬림 제국의 영화가 얼핏얼핏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난 후, 우연히 아주 특이한 제목의 소설을 읽게 됐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제목이 독특한데다가 작가는 터키 사람이고, 16세기 이스탄불이 이야기의 무대라는 말에 혹해서 집어든 작품이었다.

책을 펼쳐드니, 마치 내가 알고 있는 동네와 거리가 눈앞에 펼치지는 것 같았다. 귀에 익은 지명들이 등장하고 내가 걸어본 것 같은 골목길에 대한 세심한 묘사가 이어지자 소설은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이스탄불엔 겨우 나흘 체류한 것뿐인데 말이다.

'내 이름은 빨강'은 우리에게는 서양보다 더 멀고 낯선 이슬람 세계의 일상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이야기 구조는 추리소설의 관습에 의존하고 있지만, 각 단락마다 독자들의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그가 살고 있는 세계의 일상적 풍경이었다. 이슬람 문화를 접하기 힘든 사람에게 너무나 이국적인 풍경이지만, 그것은 서구에 의한 만들어진 이슬람 세계에 대한 편견을 여지없이 허무는 고난도의 트릭이기도 했다.

여기에 작가는 각기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을 각 장마다 화자(話者)로 내세운다. 여러 목소리가 하나 둘씩 겹쳐지다가 결국은 이야기 하나를 완성하게 되는데, 각 장은 마치 이슬람 세밀화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 '내 이름은 빨강'은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세밀화가 흥미진진한 이야기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가 너무 궁금해졌다. 이스탄불 여행 중에 사귄 터키 친구 '초라'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얼마 전 터키 소설 한 편을 읽었다고. 초라의 답장은 이랬다.

"오르한 파묵 작품이지? 넌 분명히 그의 작품을 좋아했을 거야. 왜냐면 너는 이스탄불에 있을 때 굉장히 행복해보였거든."

이진이(대구MBC 구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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