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2년만의 개인전' 남석 이성조

168폭 병풍에 담은 대작 벌써 관심

'고희(古稀)'. '예(古)부터 드문(稀) 나이'라고 일렀다지만 수명이 늘어난 요즘 나이 칠순은 그리 귀하신 몸은 아니다. 하지만, 서예 인생 50년을 정리하는 삶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8세 때 청남 오제봉 선생을 사사(師事)하고, 1959년 제8회 국전 입선 뒤 대한민국 서예계에서 승승장구하던 중 돌연 팔공산 자락으로 칩거했던 남석(南石) 이성조(70·사진) 씨가 오랜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1995년 5월 문하생들과 함께 전시회를 한 뒤로 딱 12년 만의 일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에 따르면 세상이 적어도 한 번은 변했을 시간이다. 남석은 "시내로는 나가 볼 생각도 안 했다."고 했다. 서예공모전 심사 과정에서 작품성이 아닌 심사위원의 영향력에 따라 수상작이 결정되는 것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줄곧 서예에 매진해 왔다.

다음달 23일부터 28일까지 여는 33회 개인전은 벌써 화제가 되고 있다. 168폭 병풍에 담아낸 '묘법연화경' 전 7권 6만9천384자 때문이다. 길게 펼치면 자그마치 120m에 달하는 대단한 결과물이다. 남석은 "1999년인가 그저 발심(發心)에서 시작했어. 3년 정도 작업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그때 미쳤던 것 같아."라고 말한다. 이 걸작을 만드는 과정은 실로 '뼈를 깎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먼저, '묘법연화경'을 3번이나 베껴 썼다. 3년 동안 바깥 출입 않고 작업에 매달리다 보니 작업 후에는 눈이 많이 상했다. 실명 위기에까지 갔다. 눈 수술만 2차례나 받았다.

50여 자루의 붓을 버리고 4천800여만 원의 표구비가 들었단다. 그런 역작이 이번에 일반 공개되는 것이다. 남석은 "병풍을 끝내고 나서 아는 스님이 불사를 일으켜 세운다기에 빌려줬어. 그땐 장소가 좁아 펼치질 못했으니 제대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 되겠지."라고 설명했다. 지인이 기네스북 등재를 추진 중이라고 하니 대단한 기록이다. 그러나 남석에게 이런 화젯거리는 그리 큰 관심 사안이 아니다.

"딴 건 모르겠고, '한 영감이 골짜기에 있다가 전시회 하더라.', 대작을 보고 '저렇게도 작품을 할 수 있구나.'라며 놀랐으면 해."

한국 서단의 원로로서 거동하는데 "후배들에게 영향을 안 준다고 할 수 없지 않으냐?"는 것이 남석의 반문이다. 평소 제자들에게 한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남석은 자신의 제자는 물론 다른 문화계 인사들에게도 "작가는 모름지기 작품을 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누구나 보면 작가의 기품이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술 마시고 잡기에 시간을 쏟고 작품에 허점이 보이면 여차 없이 일갈(一喝)을 던진다고 했다. 올 때마다 쓴소리를 하다 보니 서예인들의 발걸음이 많이 끊겼다고 한다.

그래도 '공부해라'가 아니라 '우리 같이 하자.'를 실천하기 위해 애써왔다. 이번 전시회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와서 보고 느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래서 "한 편으로 담담하면서도 부담이 간다."고 한다. "그냥 그동안 알게 된 지인들을 모아 '고희연'을 하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안 된다고 하더라. 그렇게 준비하다 보니 168폭 병풍은 물론 60폭 병풍까지 포함해 커졌다."고 설명했다. '부담'은 "오랜만에 신작을 발표했는데 서단이 문화예술계에서 욕이나 안 먹을까, 악영향이나 안 미칠까" 하는 생각 때문이란다. 마찬가지로 처음 선보이는 눈 감고 작업한 작품은 특히 그렇다. 예전 왼손 글씨를 발표하자마자 누군가 이를 모방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남석의 철학은 간단 명료하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 "서예인은 몸에서 '묵향(默香)'이 나도록 먹을 갈고 붓을 놀려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 칠십을 살고도 "묵언참선시, 나도 모르게 비몽사몽 간에 행위한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한 구상이 이미 머리에 가득하다."고 덧붙였다.

얼마 전 자신이 한국 원로 서예인 가운데 8번째 원로임을 알게 됐다는 남석은 맑은 웃음과 함께 합장으로 말을 마무리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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